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이야기 속에 우리들 돌고 도는 인생이 혹은 어떤 인간
*2013년 10월 2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성석제와 구효서와 윤대녕... 비슷한 시기에 읽기 시작한 작가들이고, 아마 비슷한 연배들인 걸로 기억되고 (성석제와 구효서는 동갑, 윤대녕은 4년 아래네...), 비슷한 수준의 인지도를 지녔다고 여겨지는 이들인데, 이들의 작품 발간 속도가 거의 비슷하지 않나 싶다. 서로서로 약속이라도 하지 않나 싶은데, 이들 세 명의 작품집을 최근에 한꺼번에 샀고,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중이다.
「론도」.
“... 이 세계에는 행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데, 한 사람이 행운을 많이 가져가면 남은 것을 나눠 가져야 하는 사람들의 목이 줄어든다. 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재수가 없다’고 표현한다.” (pp.28~29) 누군가의 차에 사고를 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의 차에 사고를 내는,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인가... 론도라는 음악의 형식이 무엇인지를 주석으로 살짝 달아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남방」.
라오스 여행 중에 만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생의 일막을 정리하고 이막을 그곳에서 시작해볼까 하여 콧수염을 기른 체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어줍잖은 라오스어를 구사하며 엉뚱한 사업거리를 찾고 또 투자자를 물색하는 그의 행색이 가당찮기는 한데...
「찬미(贊美)」.
“... 민주가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고 궁금해한다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절대 당사자에게 발설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닌 다음에야. 모두가 모두를 지루하고 있었다.” (p.93) 어린 시절 내가 써준 글로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면서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민주, 집안의 몰락으로 고아원에 들어갔던 민주, 동창회를 할 때마다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가장 많은 화두를 던져주던 민주... 그런 민주가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보낸 문자 한 통, 아니 또 한 통, 그리고 또 한 통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이 인간이 정말」.
표제작이고 꽤 유의미한 내용이지만 이렇게 소설을 써도 되나 싶은... 소설 속 주인공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여자가 된다면 나라도 ‘이 인간이 정말’ 이라고 외치게 될 법한... “... 인간이 직립을 하기 시작하면서 여자들은 골반이 좁아지게 됐어요. 아기를 낳다가 아기 머리가 산도에 걸리는 바람에 죽는 아기와 여자들이 많아졌어요. 여자들은 골반을 다시 키우기보다는 태어날 아기의 머리를 작게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를 하기로 결정했죠. 그러다보니까 인간의 아기는 뱃속에서 머리가 미성숙한 상태로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순식간에 엄청난 속도로 뇌세포를 성장시키게 되죠.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대려다보니 다른 기능은 포기해야 해요. 그렇게 해서 희생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억이죠. 어린 시절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건 그 때문이에요...” (p.107) 그러니까 어머니의 직장 부하여서 억지로 소개팅 자리에 나온 여자를 앞에 두고 이 인간은 끊임없이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뱉어내고 있다.
「유희(有喜)」.
임진왜란 당시 낮은 직급의 선비였던 유희가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여식인 기원에게 죽음에 이르는 고초를 받게 되는 연유가 그려지고 있다. 그런 패악을 부리고도 살아 남은 자 기원은 그럭저럭 제 명을 채우고 제 성깔대로 잘 살아갔고, 죽은 유희는 ‘죄 없이 맞아 죽은 지 백여 년 만’에야 벼슬이 중직되었다는데... 임진왜란 때나 식민지 시절이나 군부독재 시절이나, 어쩌면 우리 민족에게 되풀이되는 이 비극의 상황이라니...
「외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챙기게 된, 아버지가 사시사철 입고 다니던 자꾸만 실밥이 풀어지고 마는 외투... 그 외투를 입고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가 머물고 있는 병원에 방문하는 나... 그리고 나의 아내는 며칠 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홀린 영혼」.
“... 그는 이미 참과 거짓을 자유자재로 뒤섞고 가공해 거대한 벌집처럼 복잡한 허구의 세계를 거의 완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기술에는 시간과 장소의 착종, 오해, 백일몽 같은 게 있었는데 실상 우리 각자의 이해득실과는 상관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이에는 분쟁도 없었다.” (p.194) 어린 시절 읍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쳐 도움을 받은 이후 여차저차 하다 보니 친한 친구가 되어버린 주선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석제의 장편들에서 나오는 허풍선이 캐릭터의 기원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해설자」.
주인공이 다큐멘타리 촬영을 위해 내려간 지방에서 만난 김문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상식선에서 생겨나는 의문을 풀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는 설명을 하다 제풀에 막히자 내게 물었다. 너 뭐야, 하고. 스스로의 논리에 문제가 있을 때 의문을 제기한 사람을 공격하면 자신의 논리에 문제가 없어지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다웠다. 그뒤에 또 미진한 게 있어서 할 수 없이 그를 또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과정과 허세, 근거없는 찬양으로 오리무중의 이야기로 만들더니 내가 그걸 지적하자 다시 물었다. 너 누가 보냈어? ...” (pp.229~230) 작가의 의도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2008년에 발표된 소설이네...), 박 정권의 창궐에 기여한 이들의 스타일을 이 소설만큼 잘 투영시킨 작품이 있을까 싶다. 소설 김문일과 같은 이의 해설이 먹히는 세상, 그러한 해설이 정말 세상을 옳게 해설하는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이들이 절반이 넘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젠장...
성석제 / 이 인간이 정말 / 문학동네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