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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 《누구》

바야흐로 취업 시즌의 고군분투를 통하여 직면하게 되는 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돌이켜보면 이때만큼은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고 말할 만한 시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대학 입학을 위한 수험생 시기가 치열했을까, 아니면 사회과학 학습을 하던 대학 초년생 시절이 치열했을까, 이도저도 아니었다면 회사를 인수하여 운영하던 최근의 몇 년 동안만큼은 치열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든 시기를 치열하였음과 연관지어 떠올리지 못하였다고 해서 내가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고 단정 짓는 것은 맞을까. 혹시 그 때 그 시기에는 치열하였으나 현재 도달한 나의 위치를 안위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살아본 적 없다고 눙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취업활동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물론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체험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것은 고통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별로 대단치 않은 자신을 대단한 것처럼 계속 얘기해야 하는 일이다...” (pp.45~46)


소설은 그렇게 우리 삶에서 치열하거나 치열하고자 하는 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취업 시즌에 도달한 젊은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교 4년을 (이런저런 이유로 다들 1년씩을 추가하기는 하였지만) 모두 보내고 이제 취업을 해야 하는 시기에 접어든 다섯 명의 청춘, 그리고 대학을 그만두고 연극판에 뛰어 들어 매달 연극 한 편씩을 무대에 올리는 공연 기획자가 되어 있는 또 한 명의 청춘에 대한 (그러나 이 청춘만은 소설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달될 뿐이다)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트위터에도, 페이스북에도, 메일에도, 그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정말로 호소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데에 쓰고 답장을 받는다고 만족할 수 있는 게아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보여 주는 얼굴은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의 얼굴과 괴리가 생긴다...” (p.160)


이처럼 자칫 일반적이고 고루한 청춘 소설로 치부될 수 있는 소설은 그러나 트위터라는 지금 당대의 뜨거운 SNS를 소설적 장치로 적절히 사용하면서 독특함을 자아낸다. 어찌 보면 이 사회에 자신이라는 상품을 전면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취업 그 중에서도 면접이라는 행위는 매일매일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우리들의 생활 양태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은 데미지 종류가 다르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취업활동에서 무서운 것은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확고한 잣대가 없다. 실수가 보이지 않으니까 그 이유를 모른다. 자신이 지금 집단 속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모른다...” (p.168)


하지만 조금은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은 그러나 활기가 넘친다. 이는 꽤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캐릭터가 각각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도록 잘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낙천적이기 그지 없는 고타로나 똑 부러지는 스타일의 미즈키, 고타로의 연인이었던 미즈키에 대해 연애 감정을 지니고 있는 다쿠토를 비롯해 동거를 하는 중인 리카와 다카요시까지 모든 인물들이 충실하게 소설의 진행에 기여하고 있다.


“거리를 두고 관찰하지 않으면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겠지.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있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그런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몰래 갈고 닦은 고찰은, 분석은 독도 약도 뭣도 되지 않아. 그건 누구도 지탱해줄 서 없고, 언젠가 너를 돕는 일에도 써먹지 못해... 관찰자인 양 해 봐야 아무것도 되지 않아.” (pp.286~287)


(대중적인 문학상인 나오키 상을 수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은 상당히 속도감 있게 읽히면서도 동시에 아주 핫한 사회적 이슈를 훑는다. 더불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종의 반전을 보여주면서 현대 사회의 인간 양태까지를 살피고 있다. 역대 최연소 나오키 상 수상자라고 하는데, 재기발랄한 문장이나 속도감 있는 스토리텔링을 그저 얕은 재주라고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세상을 바라보는 치열한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아사이 료 / 권남희 역 / 누구 (何者) / 은행나무 / 307쪽 / 201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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