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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결괴》

추상적인 사유가 과격한 살인 사건과 충돌하여 발생하는 어떤 에너지...

by 우주에부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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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현학적인 문체를 버무리는데 특기가 있다. 때때로 그가 뱉어내는 말들에 너무 작의적이라는 혐의를 갖게 되지만 전체적인 미스터리한 구성이 이러한 의구심을 뒤로 밀어내면서 독서가 가능토록 만들어준다. 이번 소설 또한 선과 악, 그저 평범한 뿐인 선을 향한 절대적 악의 공격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바탕에 두면서도 사지절단 토막살인사건이라는 현실적인 설정 안에서 독자를 이리저리 휘두른다.


“신은 형이상학이야. 그러나 악마는 반드시 실재해! 악마야말로 수육受肉된 말이라고! 예수그리스도라는 발상의 뛰어난 점은 초기 라틴 교부들이 그것을 알아채고 대항할 필요를 느꼈다는 거야... 악마의 부재를 못 견디는 것은 다름아닌 인간 자신이야! 인간은 내면의 위험에 말을 부여해 밖으로 몰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해도 그것을 자기 자신과 혼동해버리는 참으로 딱하고 비참한 동물이야. 살인범, 강간범, 방화범, 절도범, ……자신이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믿으려면 자신 외의 그런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게 바로 악마야! ...” (2권, 331쪽)


소설은 료스케의 고향 방문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그는 열차 안에서 문득 ‘왜일까’라는 말의 시선을 느낀다. 자신의 삶을 향한 어떤 의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저 자신의 현재 상황을 향한 어떤 초조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의문을 작가는 독자에게 툭 던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고향집에서의 평범한 풍광이 등장하고, 료스케와 다른 듯 같은 그의 형 다카시에게로 바통이 넘겨진다.


“.. 인터넷에는 사회에 아직 제 뜻을 펴지 못한 이름 없는 개인의 능력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여 인류의 ‘진보’에 제공한다는 근대주의의 망령 같은 측면이 있지. 인적자원이라는 역겨운 말을 자주 쓰던데, 그와 비슷한 느낌이야. 글로벌한 총동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까.” (1권, 211쪽)


료스케가 평범한 능력을 지닌 반면 비범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표현되는 다카시는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 그다지 특출난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사려가 깊고 자신의 뛰어난 머리로 사물과 사람과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이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료스케와 크게 비교될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한 동생 료스케가 자신을 만난 이후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절단되어 여기저기 흩뿌려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살인은 인간의 필연이야. 인간이 인간적인 이상 살인은 반드시 일어나지. 유사 이래 이 세계가 살인을 경험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 태어나서 죽는다는 인간의 조건이 불변하는 한,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드는 행위의 신비가 주는 매혹에서 인간은 절대 도망칠 수 없어!... ” (1권, 315쪽)


료스케의 아내 요시에의 몇 마디 말에 의해 유력한 용의자가 된 다카시는 자기 자신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어둠’을 공략하는 듯한 실재하는 범인인 ‘악마’에 의해 지상의 모든 사람이 혼란스러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미궁으로 빠질 것만 같았던 사건은 이 살인에 동참하였던 고등학생인 도모야에 의해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경찰은 범행성명문을 비롯한 실마리들을 긁어모아서 주범 - 아니, ‘악마’라고 해야 할까 - 의 인물상을 조립하고 있어. 부품이 모자라는 프라모델처럼. 그러는 한편 나라는 인간의 정보를 여러모로 수집해서, 역시나 마찬가지로 사람의 모습으로 조립해 보는 거야. 그리고 그 두 개를 나란히 놓으면 똑같아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2권, 150쪽)


그저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행만을 따라가기에는 인간 실존에 대한 그리고 선과 악의 어떤 기로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종종 너무 두껍다. 그러나 또 작가의 존재론적인 사유에 집중하기에는 토막 살인과 그 사건을 접하는 주변의 시선들이 너무 분절적이다. 명문대 법학부 출신인 작가의 명민함이 대중성을 취하려고 할 때 발생한 어떤 에너지가 그저 긍정적인 것으로만 작용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 이영미 역 / 결괴 (決壞) / 문학동네 / 1권 455쪽, 2권 471쪽 / 20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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