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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 그러나 생소하고 날카롭기도 한...

by 우주에부는바람

*2013년 10월 2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얼마 전 문학을 공부하는 후배가 직접 타이핑을 해서 보내준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의 대부분의 책은 절판되어 있었다) <쐐기풀>을 꽤 감명 깊게 읽었다. 그 감명에 힘입어 유일하게 구매가 가능하였던 (이제는 꽤 많은 책이 출간되었을 것이다) 것이 이 소설집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후 작가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들었다. 뭔가 아주 독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거나 확고부동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거나 기절 초풍할만한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음에도 읽고 나면 으음, 하며 신음과 함께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물론 작가의 모든 단편들을 꼭 섭렵해야 할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도 있다우, 하며 술술 풀어나가는 작가의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생소하고 날카로운 이야기 혹은 시선은 꽤 놀랍다.


「작업실」.

“..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p.13) 이러한 이유로 글을 쓰는 나는 작업실을 하나 얻게 된다. 하지만 작업실을 빌려준 남자의 허다한 간섭에 결국 작업실에서의 작업을 포기하게 된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책이 나온 것이 1968년이란 것을 고려할 때)에 대한 작가의 소박한 반란 같다고나 할까.


「나비의 나날」.

친구들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받고 있던 마이라... 하지만 그 마이라가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서 친구들의 시선을 받게 되고, 그러한 시선을 받은 이후의 마이라는 그 이전의 마이라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어린 소녀들의 어떤 성장통의 발생 지점을 작가는 살피고 있다.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 나는 우리가 차에 타고 있던 아까 그 오후의 마지막 순간부터 거꾸로 흐르면서, 어리둥절하고 낯설게 변한, 아버지의 삶을 더듬는다. 마치 마술을 부리는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친근하고 평범하고 익숙하다가도 돌아서면 어느새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운, 끝끝내 알 길 없이 바뀌어버리는 풍경 같은 그 삶을.” (p.88) 농장을 운영하다가 이제 여의치 않아 변두리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방문 판매원인 아버지, 그러한 아버지의 차에 동생과 함께 동승하였던 나... 그리고 아버지의 옛 친구와의 만남을 비롯해 아버지의 신산한 삶을 지켜본 어린 딸의 결론이 어쩐지 스산하다.


「휘황찬란한 집」.

개발에 들어간 마을에서 옛집을 고집하여 몽니를 부린다고 여겨지는 노파, 하지만 나는 그 노파의 떠난 남편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그녀를 향한 선한(?) 사람들의 어떤 불편함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진다. 도시 중산층의 이기심에 대한 이야기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망상」.

부모와 함께 하는 길에 아이들이 목격하는 많은 것에는 알 수 없는 공포의 그림자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자, 땅에 굴을 파고 사는 자와의 만남 이후에 갖게 되는 어린 나의 망상의 이야기...


「태워줘서 고마워」.

“... 사랑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조금만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꽤 멀리까지 가서 신비주의자처럼 아주 많은 것을 내던지기도 한다...” (p.158) 사촌 형과 함께 교외로 나아가서 만났던 로이스라는 여자 아이와의 하룻밤에 대한 이야기... 시골에 살고 있으며 사랑에 상처받기 쉬운 여자 아이의 마지막 말, ‘태워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안타깝기도 하다...


「하룻강아지 치유법」.

“... 그 토요일 밤에 벌어진 사건들에 나는 매혹되었다. 파렴치하고 터무니없고 철저히 부서뜨리는 부조리를 살짝 맛보고 나서 소설은 아니어도, 삶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하여 나는 눈을 돌릴 수 없었다.” (p.183)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보모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 집에서 몰래 술을 마시고 크게 사고를 치고 만 나... 그 사건으로 인해 이런저런 곤욕을 치르게 되지만 그것이 꼭 나빴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죽음 같은 시간」.

“... 눈이 왔다. 고속도로와 집들과 소나무들 사이로 눈은 천천히 고루고루 내렸다. 처음에는 커다랗더니 차츰차츰 작아진 눈송이가 딱딱하게 굳은 밭고랑에서도 땅에 박힌 바위에서도 녹지 않았다.” (p.204) 땅에 떨어진 눈이 녹지 않는다는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어린 아이를 잃은 어미가 겪는 시간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소설인데, 그렇다고 해서 감상적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라는 성별이 나뉘게 되는 어떤 지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 계집애는,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냥 본디부터 타고난 내가 아니라 어떠어떠하게 되어야 마땅한 존재였다...” (p.220) 그런데 그 지점은 내가 알아서 도달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 도달하게 되는 곳일까...


「그림엽서」.

부잣집 사내인 클레어와 사랑을 하는 사이라고 여기고 있는 간호사인 나... 그러나 잠시 클레어가 자신 집안 소유의 섬으로 여행을 떠난 사이에 들려온 그의 결혼 소식... 자신의 품 안에 있던 한 남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떠나게 될 때 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어처구니 없음과 달리 주변의 반응은 일상적이기만 한데...


「붉은 드레스-1946」.

인가 없는 아이였던 나의 첫 번째 무도회 이야기라고나 할까... 자신을 부추기는 엄마의 성화에 짜증을 내며 도착한 무도회장, 그리고 아무도 자신에게 춤을 신청하지 않는다는 현실... 그러나 여자 선배와의 작은 일탈 뒤, 나는 뭔가 새로운 시간 혹은 공간으로 들어서게 되는 것만 같다...


「주일 오후」.

개닛 부인네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앨바... 그 집에서 파티가 있던 주일 오후에 있었던 키스 타임.... 그 시간에 부여하는 앨바의 어떤 자긍심에 대한 이야기인데, 하지만 그 시간이 또한 ‘신기하면서도 불가사의한 굴욕을 느낄 그곳’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한 듯...


「어떤 바닷가 여행」.

메이와 할머니 앞에 나타난 최면술사... 그 최면술사의 말을 믿지 않는 할머니를 최면술사는 자신의 앞에 앉히고 최면을 시작하는데... 최면과 함께 숨을 거두는 할머니의 깐깐한 삶에 대한 이야기...


「위트레흐트 평화조약」.

엄마를 모시며 시골에 머물렀던 동생 매디, 그리고 집을 떠나 제 삶을 꾸려온 헬렌... 두 자매 사이에 가로 놓인 어떤 간격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간격의 사소함 혹은 깊이에 대한 이야기...


「행복한 그림자의 춤」.

표제작이다. 매번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여는 마살레스 선생님의 이야기... 이 선생님의 행위에 대해 비웃음으로 일관하는 이야기인데, 마지막 순간 한 여자애의 놀라운 연주가 시작된다. “... 기적을 믿는 사람은 정말로 기적이 일어날 때 법석을 떨지 않는다...” (p.398) 어쩌면 기적을 믿으며 살아왔기에 담담할 수 있었던 마살레스 선생님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앨리스 먼로 / 곽명단 역 / 행복한 그림자의 춤 (Dance of the Happy Shades) / 문학에디션뿔 / 414쪽 / 2010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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