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일상의 한 부분은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같이...
김중혁의 산문집은 일단 재미있다. 게다가 비슷한 연배인 작가의 생활의 테두리는 나의 그것과 겹치는 부분이도 많아서 읽는 동안 꽤 여러 곳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음으로 수긍하게도 된다. 이번 산문집은 특히나 작가가 감응하였던 음악 또는 음악과 관련한 추억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일상의 한 부분은 좋은 음악을 즐기는 청자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재미있지 않기가 힘들다.
시골 학교를 전전하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 올라온 이후, 점심 시간이면 교실에서 흘러 나오는 아메리칸 팝이 내가 능동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전 처음 듣는 그 노래들을 부른 이와 만든 이와 제목과 앨범명까지 두루두루 꿰고 있던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단짝 친구의 영향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그룹 서바이버의 아이 어브 더 타이거와 마이클 잭슨의 쓰릴러 앨범을 들었다.
“... 예전에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누군가 음악을 추천해주면 그 음악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게 속상했다. 세상에나, 세상이 얼마나 넓고 뮤지션은 또 얼마나 많은데 그만 일로 속상해하나 싶지만, 그때는 그랬다. 모르는 음악이 나오면 음악 듣기를 소홀히 한 것 같았고, 내가 음악을 잘못 듣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언제부턴가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 모르면 모르는 거고, 알면 운이 좋은 거고, 멋진 음악을 소개해준 사람을 좋아하면 되는 거다...” (pp.68~69)
하지만 곧 락음악으로 방향을 선회하였고 (산문집 안의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월간팝송》이라는 잡지를 통해 소개되는 락 밴드의 계보나 세계 3대 기타리스트나 드러머 등을 암기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대학 입학한 이후에는 풍전등화인 민족의 운명을 걱정하며 서구 음악과 결연히 절연하고 한동안 민중가요와 정태춘 정은옥 등에 둘러싸인 채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구십년대에 접어들면서 리버럴하기만 하였던 성향은 곧 너바나로부터 촉발된 얼터너티브 락의 부흥회에 올라타지 않을 수 없었고, 4수인가 5수인가를 하면서 음악 듣기에 매진하였던 동생을 통하여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아트락이나 일본으로부터 조용히 공수된 제이팝도 간간히 들었다. 뭔가 다른 사람들과 대단히 조응할 수 있는 글을 쓸 수도 있으리라는 염원으로 펜을 놓지 않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 쉬지 않으면 쉽게 질리고 만다. 최고의 문장 100개가 모조리 연결되어 있으면 그 어떤 문장도 빛이 나지 않는다. 쉬어가는 문장, 쓸데없는 문장 같은 문장이 조금씩 섞여 있어야 좋은 문장이 더 빛나게 마련이다...” (p.87)
하이텔 시절에는 텍스트로 음악 정보를 공유하면서, 그리고 그 이후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에서 파일들로 음악 정보를 공유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 사이 제3세계 음악과 포크 락에 빠져 있던 시기를 거쳐 사실 지금은 그저 편안하게 다른 사람이 소개해주는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정도의 마음의 수준을 갖게 되었다. 작가도 이야기하듯 아등바등 음악을 듣는 다른 이들과 경쟁하던 시절은 먼 과거의 일이다.
“... 요즘의 내 세계는 ‘3인칭의 세계’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무덤덤해졌고,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1인칭의 장점이 있고, 3인칭의 장점이 있다. 1인칭의 세계는 열정적이지만 배려가 부족하고, 3인칭의 세계는 공정하지만 솔직함이 부족하다.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p.111)
음악과 관련된 에세이들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도 소설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음악이든 문학이든 그것이 예술이라는 하나의 범주 안에서 함께 호응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결국은 나를 더듬어 확인하는 하나의 촉수로 기능함을 확인할 수 있고, 그것들을 통하여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이 틈틈이 산문집에 끼어들고 있다.
“세월을 보내고 나이를 먹으면 우리가 쌓아가는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몇 시간의 기억이다. 밤을 꼴딱 새우며 책을 읽었던 시간들, 처음으로 가본 콘서트장에서 10분처럼 지나가버린 두 시간, 혼자 산책하던 새벽의 한 시간. 그 시간들, 그리고 책 속, 공연장, 산책길처럼 현실에 있지만 현실에서 살짝 어긋나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p.229)
나는 내가 음악을 들으며 살 수 있음에 만족스럽다. 책을 사고 음악을 모으는데, 그것이 어느 시점 이후의 내 삶을 연명시키는 양식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책을 다시 읽는 동시에 그 책을 사고 읽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고, 나는 음악을 다시 들으면서 동시에 그 음악을 처음 듣던 시절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몇 시간의 기억’을 끄집어 내는 데에 그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그리고 더 깊게 나와 우리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중혁 / 모든 게 노래 / 마음산책 / 230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