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라기보다는 여자 혹은 여성성을 향하여 길게 뻗고 있는 촉수...
「엄마도 아시다시피」.
팔십오 세로 그의 엄마는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지난 삼십여 년간 그래 왔던 것처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머리맡에 놓인 물을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 잠시 앉아 있다가 나와서 출근 준비를 하고, 구두주걱을 사용해 구두를 신은 다음 집을 나섰다...” (p.13) 어머니의 죽음 뒤에도 여전히 이어지던 일상은 어느 날 식사를 하다가 어머니가 챙겨주던 손수건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식당에서 엉엉 우는 것으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이제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한복을 자신의 몸에 걸치는 것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남은 교육」.
“너는 나쁜 여자다... 네가 건 주술에 걸려 제 등에 비수를 꽂아버린 저주받은 여자. 고통을 사랑하고, 비극을 연출하고, 통증을 음미하는 너는, 너는 나쁜 여자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울부짖는 너는, 너는 나쁜 여자다.” (p.75) 한 집에서 살게 된 엄마와의 격렬한 다툼, 그러한 엄마를 향한 패악은 그러나 여자의 남자 친구와의 사이에서의 격렬한 다툼으로 이어진다. 너, 그 여자를 만든 것인 엄마의 어떤 모습을 향한 저주는 결국 너, 그 여자 자신에게로 향하고 만다.
「젓가락여자」.
“목표는 없어도 돼. 이 깃발에는 아무것도 씌어져 있지 않거든. 목표 없는 깃발이란 말이지. 십 년 동안은 유예기간이야.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되는 기간. 맘껏 즐기고 맘껏 실패하고 맘껏 궁리해도 되는 기간. 어차피 유예기간이니까 상관없잖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때까지만 알아내면 되는 거야...” (p.84) 학창시절 내게 큰 영향을 미쳤던 언니는 이제 작가가 되었고, 나는 현재 몸담고 있는 독서 클럽에 그 언니를 부를 수 있다고 장담한다. 그 언니를 향한 혹은 그 언니에 대한 나의 독백인 이야기인데, 어딘지 그로테스크하다.
「유리입술」.
“그는 두 손을 활짝 펴고 조용히 원을 그리며 청년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 손은 약손이다, 약손. 내 손은 약손... 그는 처음으로 마음은 몸의 어느 기관에서 지배하는지 궁금해졌다.” (p.150) 그의 엄마는 음식을 많이 먹는 대회에 참가하여 받은 상금으로 나를 키웠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거부하려고 마음 먹은 어느 날 엄마는 그렇게 먹은 음식으로 인하여 죽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박제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고, 어느 날 윗집 청년의 고양이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청년은 죽은 고양이의 박제를 부탁하며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한다.
「스물세 개의 눈동자」.
“... 내가 이 녀석 목덜미를 잡아서 집어던졌지. 멱따는 소리를 내면서 나동그라지는데. 자지는 줄어들지도 않고 벌건 것이. 화를 더 돋우네. 그러고 보니까 다른 놈들 눈빛도 똑같은 거야. 불쌍한 놈아. 우리랑 같은 놈 주제에 뭘 그리 힘을 주냐. 딱 그런 눈빛...” (p.180) 아이를 낳기에 부적합한 정자를 가지고 있는 남편은 아내가 강아지를 데려다 기리는 것을 묵인하였다. 하지만 그 강아지들이 점점 늘어나던 어느 날, 강아지의 눈빛을 참지 못하고 그만 강아지에게 해코지를 하고, 개들의 반란으로 집을 나와 몸을 피신하게 된다.
「감은 눈 뜬 눈」.
“... 여자들의 기다란 손톱과 가느다란 목과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에 가슴이 설레고, 여자들의 통통한 불두덩과 봉긋한 아랫배와 동그란 무르팍에 피가 뜨거워진다. 위태로운 것은 위태로워서 좋고, 둥근 것은 둥글어서 좋다. 여자들의 몸속엔 발이 푹푹 빠지는 개흙이 있는가 하면, 은빛으로 빛나는 모래사장도 있다...” (p.186) 소설을 끌어가는 나의 존재가 희안하다. 나는 그녀의 눈 밑에 있는 어떤 존재인데 꽤나 불분명하다. 버림받은 아이의 몸에 기생하는, 일종의 여성성이면서 동시에 여성성을 동경할 뿐 여성성에 이르지 못한 어떤 존재가 바라보는 아이와 아이의 동생의 이야기이다.
「내 가혹하고 슬픈 아이들」.
“그는 궁금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어느 정도의 온도가 필요한 것인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피가 문제가 되는 것인지.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온도를 생각했다. 미지근했다...” (p.246) 시체가 발견된 집에 있는 두 아이, 그리고 결국 밝혀지는 두 아이에 의한 살인(직전의 단편인 <감은 눈 뜬 눈>과 연결되는 이야기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이라는 끔찍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인데, 그것이 이 사건을 담당한 형사의 문이 겪는 조잡하고 현실적인 설정으로 이어진다. 뭔가 꽉 맞물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천운영 / 엄마도 아시다시피 / 문학과지성사 / 278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