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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

좋으면서도 싫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운, 어떤 변화의 내력...

by 우주에부는바람

*2013년 7월 3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뭔가 변화를 꾀하던 하루키가 잠시 고삐를 늦추고 이전의 하루키로 살짝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다. 마음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시름을 덜어내기 위해서, 그러니까 조금 가벼워지고 싶어서 집어 들었는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색채 희박하다고 여기는 쓰쿠루 본인이 사실은 나름의 색으로 다른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과 달리, 나름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내가 실은 색채 희박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만 한 가득 떠안게 된 것은 아닌지...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었다. 그리고 그 여름을 경계로 다자키 쓰쿠루의 인생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날카롭게 솟은 능선이 양쪽의 식물 상태를 다르게 갈라놓듯이.” (p.39)


소설은 육 개월에 걸쳐 죽음만 생각하였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러한 죽음에의 경도에는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나고야의 네 친구들로부터의 절교 선언이라는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영문도 모른 체 그룹으로부터의 탈퇴를 강요당하였지만 다자키 쓰쿠루는 죽음을 생각한 육 개월 동안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십육 년이 흘러 삼십대 중반이 되어 있는 현재까지도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희박하다고 생각하였던 자신의 색채 그대로 그저 묵묵히 그 절교를 받아들였을 뿐이다.


“내 인생은 스무 살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발걸음을 멈춰버린 것 같다고 다자키 쓰쿠루는 신주쿠 역의 벤치에 앉아 생각했다. 그 이후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 시간은 잔잔한 바람처럼 그의 주위를 조용히 불어 지나갔다. 상처도 남기지 않고 슬픔도 남기지 않고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이렇다 할 기쁨도 추억도 남기지 않고. 그리고 이제 그는 중년의 영역으로 접어들려 했다...” (pp.421~422)


다자키 쓰쿠루는 그 죽음의 시간을 하이다라는 동성 후배와의 만남을 통해 희석시켰고 지금은 사라라는 연상의 여자와의 관계를 통해 오래 전 자신이 모르고 넘어갔던 절교의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그는 이제 아카, 아오, 시로, 구로라는 네 명의 친구 자신과는 달리 이름에 레드, 블루, 화이트, 블랙이라는 색을 가지고 있던 그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여정은 곧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가 된다.


“... 저기, 쓰쿠루, 우리가 우리였다는 거,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니었던 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p.378)


지나간 것들은 어떻게든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닐까. 수동적이고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던 어떠한 과거 또한 현재의 삶의 원인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 아닐까. 바로 지금의 문제적 삶의 근원을 찾는 일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이 힘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추동을 받는 일 또한 그래서 회피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건 그렇고 이제 순례를 끝낸 다자키 쓰쿠루의 삶에는 어떠한 변화가 생기게 되는 것일까.


“눈을 떴을 때, 세계의 형태가 얼마간 변해 버린 것 같았다. 플라스틱 테이블, 하얗고 단순한 커피 잔, 반쯤 남은 샌드위치, 왼쪽 손목에 걸린 오래된 자동 태그호이어 시계(아버지의 상징적 유물), 읽다 만 석간신문, 도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 점점 밝아져 가는 건너편 가게의 쇼윈도.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 일그러져 보였다. 윤곽이 뿌옇게 흐려져 입체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축척도 잘못되었다. 그는 몇 번이나 깊이 숨을 들이쉬고 조금씩 마음을 안정시켜 갔다.” (p.287)


몽환적인 은유 그리고 뉘앙스와 실루엣으로 점철된 오래전의 하루키와는 다르지만 그 흔적을 발견한 것 같아서 묘하다. ‘눈을 떴을 때, 세계의 형태가 얼마간 변해 버린 것 같았다’아 같은 문장은 딱 하루키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하루키의, 그 변화를 유의미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재주는 여전하다. 좋으면서도 싫은,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운, 모든 변화에는 그런 내력들이 있는 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 양억관 역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色彩を持たない 多崎つくると,彼の巡禮の年) / 437쪽 / 201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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