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개연성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이 장르 작가의 근성...
이전 소설인 <7년의 밤>에 비하여 미스터리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차용에 좀 더 무게를 싣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여 장르 소설에 대한 문학계의 처우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의 풍토 안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작가가 아닐까. 흔히 순수 문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문단 문학이 지루한 자기 복제를 거듭하며 소재의 고갈에 시달리고 있는 데 반하여 장르 문학은 어쨌든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수의사로서 동물을 만날 때, 재형은 자신이 누군지 잊으려 애썼다.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못하면 그의 손에 놓인 생명은 대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었다. 생명을 목적이 아닌 대상으로 인식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열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는 이미 오래전에 학습한 바 있었다...” (p.115)
소설은 알래스카에서 벌어지는 ‘아이디타로드’라는 개썰매 경주 장면으로 시작된다. 1600킬로미터 이상을 개썰매로 달리는 이 경주에 참가한 재형은 늑대에게 자신의 개들을 희생시키고 그 대가로 목숨을 건졌다. 이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재형은 한국으로 돌아와 수의사 자격을 딴 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화양의 드림랜드에서 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며 삶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다.
이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다른 네 명의 인물이 존재한다.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재형이 개 쿠키와 관련한 악연을 갖고 있는 박동해, 익명의 제보를 통해 서재형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실었다가 이후 재형을 사랑하게 되는 김윤주 기자, 특전사 출신으로 구급대 팀장으로 최초의 전염병 발발 장소를 겪은 한기준, 그리고 화양시에 들어온 군인인 쌍둥이 동생 현진과 고지식한 아버지를 둔 간호사 노수진이 그들이다.
또한 위의 다섯 사람의 시점과 함께 소설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링고라는 개다. 아마도 이 전염병의 숙주로 여겨지는 링고는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갖은 고초를 겪다 탈출하고 이어 재형의 개인 스타와 연을 맺게 된다. 이후 조금씩 재형에게 마음을 여는 것 같지만 결국 스타의 죽음 이후 다시금 마음의 문을 닫는다. 링고 그리고 스타와 함께 소설을 이끄는 또 한 마리의 개는 쿠키인데, 사이코패스 박동해의 집요한 공격을 받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pp.345~346)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 또한 읽는 사람을 적당히 쥐락펴락하는 스토리 전개가 훌륭하다. 또한 그 전개 안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글픈 본성’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인간과 개를 넘나드는 전염병이라는 소재를 활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며, 그 사이 개와 개 사이의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정을 그리는 데도 소홀하지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기본적으로 탄탄한 문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안정감을 준다.
“턱 밑에서 곱실대는 윤주의 머리칼을 바람이 들추고 지나갔다. 앙상하게 불거진 목뼈가 보일 듯 말 듯 깐닥거렸다. 코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할 말을 꾹 눌러 넘기는 것처럼, 그것이 목을 찔러 피를 낸 것처럼...” (p.476)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개연성의 부족이라는 측면은 아쉽다.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별다른 피부 접촉 없이도 감염되며 감염 후 며칠 이내에 발병하고 죽음에 이르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은 멀쩡하다. ‘병원체에 대한 감수성이 없으면 그럴 수 있어요.’라는 것이 설명의 전부이다. 또한 우연히 얻어 탄 트럭의 운전사가 노수진의 아버지이고, 그러한 노수진을 한기준이 보호하게 된다는 설정 또한 억지스럽다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별다른 오차 없이 찰기로 가득했던 전작에 비한다면 그런 면에서 살짝 허술해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에게 마지막까지 보여주는 링고의 애정이 드러나는 장면이나 재형이 자신을 물고 있는 링고를 처절하게 붙잡고 있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주는 중압감은 대단하다. 이것은 어쨌든 독자를 집어삼킬 듯한 이 작가의 흡입력이 배어든 탓일 것이다. 이래저래 좋은 장르 작가임은 분명해 보인다.
정유정 / 28 / 은행나무 / 495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