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미넥 감독 <네버 렛 미 고>

숙연하고 처연하게 아름다와라, 사랑스러운 절제의 그녀와 함께...

by 우주에부는바람

아무것도 설명하고 있지 않아서 더욱 숙연하고 처연한 - 그들은 어째서 탈출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지? 도대체 그들의 원본은 어디에 있는 것이지? 그들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은 왜 등장하지 않는 것이지? 왜 아무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지? - 그렇게 이해를 구하지 않아서 오히려 아름다운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캐시의 마지막 말 또한 그렇게 의문으로 끝이 날 뿐이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를 원하던 사람들의 그것과 많이 달랐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가까운 과거이다. 그러니까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100살 이상으로 연장이 된 1950년대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수명 연장과 함께 인류는 자신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도우너라고 불리우는 장기 기증용 복제 인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들은 바로 그렇게 도우너로 태어나고 성장한 세 명의 복제인간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복제인간이라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를 차용하고 있으나 기존의 SF 영화와는 전혀 다른 외양을 갖추고 있다. 세기말적인 음습함 대신 구시대의 고풍스러운 고즈넉함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주인공들의 과학적인 창조 순간에 집착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과 대비시키기 위한 일반인을 (그러니까 복제 인간이 아닌) 굳이 내세우지 않는데, 이로 인해 더욱 이들의 존재 자체를 우리들과 구별하지 않고 몰입하며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동시에 영화는 세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시린 사랑의 통증으로 가득하다. 성장한 이후를 기대할 수 없는 이들의 존재 방식, 그러니까 세 번 혹은 네 번의 장기 기증이 끝나면 죽음, 이 아니라 완료되어 버리는 이들의 운명은 이들의 성장통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고, 이들의 로맨스를 더욱 처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사랑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계속해서 체념한 듯 받아들이기만 하던 자신들의 삶에 작으나마 유예기간을 가지고 싶어 하는 캐시와 토미의 마지막 자취를 따라가는 일은 힘겹기만 하다. 그렇게 그들이 어렵사리 구한 주소로 갤러리 운영자의 집을 방문하였을 때, 그리고 그곳에서 옛날 헤일셤 학교 교장과 맞닥뜨려야 할 때, 그들이 내뱉는 냉정하기 그지 없는 발언을 들어야 할 때, 돌아오는 길 차에서 내린 토미가 절규할 때 가슴 깊숙이 먹먹해지고 만다.



“우리는 여러분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 갤러리를 운영한 게 아니에요. 여러분에게 영혼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운영한 거예요.”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삶과 사랑에 대한 사유로 가득하지만 또한 그러한 사유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아서 좋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배우들의 도드라지면서도 조화로운 연기 또한 조금은 심드렁할 수 있는 영화에 적절한 힘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캐리 맬리건의 동작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는 신비롭게 다가왔다. 언제고 튀어오를 것 같은 루시와 토미의 그것들을 바로 그 캐시의 동작과 눈빛이 가까스로 조율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를 설명하며 주인공들의 체념의 정서를 말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 체념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들이 복제 인간이라는 자신들의 존재 양식을, 장기를 기증하고 완료되어야 하는 그들의 운명을, 그저 있는 그대로 체념하며 받아들이고 있어 우리 일반인은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된다. 만약 이들이 장기 기증 복제 인간이라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자 하였다면, 이토록 우리들 내부에 잠복해 있는 이기심과 탐욕을 부끄러워할 수 있었을까.



네버 렛 미 고 (Never Let Me Go) / 마크 로마넥 감독 / 캐리 맬리건, 앤드류 가필드, 키이라 나이틀리 출연 / 가즈오 이시구로 원작 / 103분 / 20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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