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책이 갖는 매너리즘의 탈피는 요원하니...
책에 대한 책을 꽤 읽는 편이다.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하지만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식의 책으로 엮이는 것인지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책들 사이에 큰 변별이 있지는 않다. 책 자체 혹은 책을 읽는 이들에 대한 예찬이거나 책이 놓인 자리 혹은 책을 읽고 있는 공간에 대한 품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는 충분한 변별력을 가지고 있다.)
‘독자 권리 장전’ 1. 책을 읽을 권리 2. 책을 읽지 않을 권리 3. 어디에서라도 책을 권리 4. 언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 5. 책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권리 6.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7. 다시 읽을 권리 8.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9.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을 읽지 않을 권리 10. 책에 대한 검열에 저항할 권리 11. 책의 즐거움에 탐닉할 권리 12.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 읽을 권리 13. 반짝 독서를 할 권리 14. 소리내서 읽을 권리 15. 다른 일을 하면서 책을 읽을 권리 16.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권리 17. 책을 쓸 권리 - 저자가 다니엘 페낙의 《소설처럼》에 나오는 ‘독자의 절대적 권리 선언’을 보완하여 작성
이번 책에 대한 책에서 나름 변별력을 가지는 부분은 책의 서두에 실린 ‘독자 권리 장전’이 아닐까. 그중 맘에 드는 항목은 ‘책을 중간중간 건너뛰며 읽을 권리’와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해 말하지 않을 권리’ 같은 것들... 게다가 그 권리 장전이라는 것이 열 개나 스무 개로 딱 떨어지도록 되어 있지 않고, 열 일곱 개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여하튼 이 책의 저자가 뭔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었으니...
“책을 읽다가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연합군이 독일을 점령했을 때 지리적으로 독일에 가까운 소련군은 독일의 과학자들을 재빠르게 소련의 연구소로 빼돌렸다. 뒤늦게 독일에 도착한 미군은 독일 도서관과 연구실에 쌓여 있던 책을 본국으로 실어날랐다. 독일 과학자를 빼돌린 소련은 과학기술 경쟁에서 50년대까지 미국을 앞섰지만 독일에서 온 과학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점차 과학발전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 반면 책을 실어나른 미국은 그 책을 해독해 수많은 과학자를 교육하여 결국 소련을 앞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의 원천으로서 책은 사람보다 힘이 세고 오래간다.” (pp.038~039)
다른 부분들은 여타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나 책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책을 읽는 행위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 그 이상을 이야기하려 애쓴다. 그래도 위와 같은 에피소드는 재미있다. 물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살짝 찜찜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더불어 저자는 때때로 책을 읽는 행위에 일상적이지 않은 특성을 부과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 유교적 선비, 불교의 승려, 가톨릭 수사 들은 모두 세속의 욕망을 제어하고 ‘한가함’을 누림으로써 책을 읽을 시간과 자유를 확보했다. 그러나 그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한가하게 만들 수 있다. 여기서 한가함이란 할 일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해야 하는 일들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한다.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p.065)
하지만 이 또한 ‘한가함’의 정체가 조금 모호하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모호함이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또 마음을 풀어 놓고 읽으면 그럴만도, 하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책 읽는 사람이 다른 책 읽는 사람에게 갖게 되는 호의의 감정이 작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래와 같은 부분은 나의 현재에 빗대어 새겨둘만 하다. 부서지고 헐거워지고 수선해야 할 곳 투성이인 삶의 어느 곳을 메워가야 하는 것인지 대책이 안 서는 총체적인 난국에 처해 있으니 말이다.
“... 장년의 독서야말로 자기 자신의 정신적 안정과 휴식을 위한 ‘둥지 짓기’로서의 독서라고 할 수 있다. 새가 진흙, 마른 나뭇가지, 나뭇잎, 조개껍데기 등등을 물어다가 자기가 들어앉을 집을 짓듯이, 독서는 자기 자신의 정신이 편안히 머무를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둥지를 짓는 일이다. 책 속에는 둥지를 짓기 위한 진흙과 나뭇가지, 나뭇잎과 버려진 철사, 셀로판지 등이 들어 있다. 책 속에서 얻은 것들을 자신의 문제의식에 따라 비바람에 부서지지 않게 배치하고 쌓아올리고 빈 구멍을 메워가는 독서야말로 자기 자신만의 정신적 삶을 사는 길이다.” (pp.082~083)
읽는 동안 자꾸 까칠한 마음이 되었던 것은 어디서 한 번쯤 읽은 것 같은 이야기를 다시 읽어야 한다는 피로감이 인 탓이다. ‘모든 서재는 그 주인의 내면 풍경이다’와 같은 말은 분명 고개 주억거리게 되는 말이지만, 이제 그만 일정 정도 변형된 사용이 이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여하튼 책 많이 읽는 형과 형수에게, 초등학생 2학년인 딸이 꼭 많은 책을 읽어야만 하는 것이냐고 묻는 동생에게 해줄, 적당한 대답은 얻을 수 없었다. 실은 이번 독서의 주요 목적은 그것이었는데 말이다.
정수복 / 책인시공 冊人時空 / 문학동네 / 297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