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김수영이 가지지 못하였던 것을 지금 우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니...
*2013년 5월 3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책읽기에 진척이 없어 고생스러웠다. 강신주의 글을 읽고 내처 김수영의 글을 집어 든 것이 보름 전인데 내내 헤메이다가 버석거리는 마음을 다잡고자 이틀 밤을 새며 겨우 읽어냈다. 1921년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민족의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4 · 19 혁명의 시기를 거쳐낸 시인의 족적을 그의 산문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은 그렇게 더디기만 하였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니 - 청와대 대변인의 막가파식 성범죄와 한국형 넷우익인 일베의 악행으로부터 비롯된 표현의 자유 문제, 그리고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밝히고 있는 우리 사회 상류층의 조시회피 문제 등 - 책을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들여다보느라 그랬다, 라고 말할 수 있으려는지...
책은 김수영이 자신의 일상과 그로부터 비롯된 현실 인식을 가볍게 쓴 글을 모은 1부, ‘창작과 사회의 자유’ 에 대한 생각을 적은 글들을 모아 놓은 2부, 시와 문학 전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김수영의 지론을 살펴볼 수 있는 3부, 김수영이 직접 쓴 시작 노트와 편지와 일기로 구성되어 있는 4부, 각종 문학지에 기고한 시 월평을 모아 놓은 5부, 그리고 작가가 <의용군>이라는 제목으로 쓰려고 하였던 장편 소설의 앞부분인 6부와 김수영이 번역한 작품의 목록인 7부로 되어 있다. (1981년 초판에는 실려 있지 않은 글들이 몇 개 실려 있으며, 7부는 초판에는 없던 목록이다.)
“복지사회란 경제적인 조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의 탐구가 상식이 되는 사회이어야만 하는데, 이러한 영혼의 탐구는 경제적 조건이 해결된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마치 소학생들이 숙제 시간표 만드는 식으로 시간적 절차를 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의 개발은 호흡이나 마찬가지다. 호흡이 계속되는 한 영혼의 개발은 계속되어야 하고, 호흡이 빨라지거나 거세지거나 하게 되면 영혼의 개발도 그만큼 더 빨라지고 거세져야만 할 일이지 중단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중단될 수도 없는 일이다.” (pp.159~160)
지금으로부터 오십 여 년 전에 주로 활동한 시인이지만, 읽다보면 그 시선에 여전히 유효한 구석이 많아서 놀랍다. 간혹 옛날 사람이 가질법한 마초적인 근성이 드러나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되지만 이 또한 자신의 성정을 숨기고 꾸미는 것을 참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작가의 기질 탓이리라. 이러한 진실성을 기초로 하여 지성과 자유의 지평을 높고 넓게 가져야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본 문학에의 열망이 글 전체에 두루 포진해 있다.
“... 그 까만 19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지성을 말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이 통행금지 시간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고, 윤비의 국장을 다음 선거의 득표를 위한 쇼로 만들었고, 부정 공무원의 처단조차도 선거의 투표를 계산에 넣은 장난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신문은 감히 월남파병을 반대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은 질식 상태에 있고, 언론자유는 이불 속에서도 활개를 못 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한 일은 지식층들의 피로다...” (p.185)
특히 4·19 혁명 이후 지지부진한 사회 변혁에 대해 일갈을 멈추지 않는다거나 그러한 변혁의 시기에 감당해야 할 문학의 몫을 문학인들이 하지 못하는 현실을 뜨겁게 질책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단순히 신동엽과 비교하여 모더니스트 계열로 분류하는 김수영이지만 시인이자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그가 가지고 있던 문제 의식은 신동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그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추구하고자 하였던 해결의 방식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 나비와 벌이 오지 않는 꽃은 죽은 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말살하는 정치 기구가 아무리 방대하고 근대화하고 세련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이 없는 정치, 사랑이 없는 정치, 시가 없는 사회는 중심이 없는 원이다. 이런 식의 <근대화>는 그 완성이 자멸이다...” (p.201)
그러한 그가 1968년 사십대의 나이에 사고로 죽은 것은 많이 안타깝다. 무엇으로부터의 억압도 거부하고자 하였던 작가가, 사랑을 기반으로 한 무한한 자유를 주장하였던 작가가 좀 더 살았더라면 모두가 숨죽이던 독재의 시절, 그 숨통을 틔우는 단초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살아 있었다면 보다 리얼리스트의 입장이 되었을 것이라는 백낙청의 예측이나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강신주의 예측은 무의미하다. 그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였던 그는 아마도 자유를 위하는 길에서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은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p.403)
유명한 김수영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에 나오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옮겨 본다. 시를 그 무엇도 아닌 시로서만 오롯하게 세우기를 바라는 시인이었고, 그렇게 세워지기를 바라는 평론가이기도 하였으며, 혁명 후에도 모두가 시인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본 낭만적인 에세이시트이기도 하였던 작가의 호흡은 바로 지금 더더욱 필요해 보인다. 그때 작가가 가지지 못하였다고 소리치던 것을 우리도 아직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김수영 전집 2 : 산문 / 김수영 / 민음사 / 636쪽 / 2003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