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진 《빈집을 두드리다》

두드릴 뿐 열리기를 고대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뤄진 도시 풍광이라고나...

by 우주에부는바람

도시 속의 일상... 아파트, 옆집, 지상과 지상의 위, 낙하하는 것들과 움직이는 것들, 소음 혹은 정적, 욕망과 허위, 무위와 탐닉, 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는 자, 들어 있거나 비어 있는 자, 방이나 열쇠, 그와 그녀와 나로 구성되는 불온함 혹은 불안함, 음습하게 젖어있거나 바짝 말라 무료하기 그지 없는 도시의 일상들은 너저분하다. 그 너저분함을 향하여 고군분투하고 있기는 하지만...

「빈집을 두드리는 이유」.

나는 집주인이 집을 비운 아파트에서 입주한 채 애완동물을 돌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리고 비어 있는 듯 한 옆집 남자를 주시하고 있다. 나는 그가 일주일에 서너 편의 영화를 본다는 사실이나 인터넷쇼핑을 즐기며 정장을 좋아하고, 무채색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를 보지 않고도, 그에게 배달된 물건이나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나는 그를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틈틈이 지상을 향하여 돌맹이를 던진다. 그 돌맹이는 때때로 자동차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용케 걸리지 않고 있다. 나는 1108호에 있고 비어 있는 옆집은 1109호이다.

「나는 나를 가둔다」.

아마도 일본의 수면 캡슐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것 같은, 잠자리 대여 공간에서 일을 하는 여자, 그리고 자신의 오피스텔이 아니라 이곳에 와야 잠이 들 수 있는 남자... 그리고 남자는 잠을 자고 나오며 때때로 여자에게 자신이 꾼 꿈의 해몽을 부탁한다. “수면의 자유, 스스로를 가둘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당한 그들은 불쌍하고 안쓰럽다. 잠은 왜 꼭 자야만 하는 것일까. 꼭 자야만 함에도 왜 불면의 고통이 생겼을까. 그냥 자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는 잠에도 노동에서 요구되는 긴장이 필요해졌다. 잠들기 전의 고된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억압받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p.66)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티슈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모른 척 하는 그것을 줍고 모으는 나... 그리고 내가 거주하는 다락방 옆의 지붕과 그 지붕에 기거하는 하얀 발을 가진 검은 고양이의 이야기... 나와 결혼한 여자의 여자인 애인이나 티슈에 립스틱을 묻혀서 낙하시켰던 티슈여자 대신 추락한 것은 남자라거나 하는 설정이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 보통 사람과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삶의 방법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사람이므로, 그래서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알려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쉽게 생각하고 비난하고 감싸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상처주는 것뿐이다...” (pp.96~97)

「찾아가는 도서관」.

대형 버스로 이동 도서관을 운영하는 남자와 그 이동 도서관을 찾아오는 여자들... 책을 빌려주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파트를 배회하는 개를 잡아다가 파는 일을 하기도 하는 남자와 책을 빌리기도 하지만 남자와 뒤엉켜 욕망을 풀어내기도 하는 여자들... 죽은 후배가 건넨 유서 쪽지 그리고 우연한 만남과 그 뒤로 이어지는 급작스러운 버스 사고가 석연찮아 아쉽다.

「나쁜 이웃」.

착하고 좋은 이웃이었던 옆집 노인이 두어 달째 보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의 대소사에 자꾸 끼어들어 욕을 먹고 있지만 그녀는 이번에도 물러설 수가 없다. 우유 투입구를 통해 맡게 된 냄새는 그녀를 더욱 닦달한다. 경찰관과 소방관과 열쇠 수리공이 나서서 그 아파트의 문을 연다. 사람들이 온통 주목한다. 모두의 호기심과 그녀가 짐작한 결말을 위하여 그곳에 그 노인이 죽어 있어야 할까, 아니면 모두의 호기심을 뒤로 한 채 그 노인이 살아 있어야 할까...

「페이지들」.

설정은 무척 재미있다. 서점 혹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나는 아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페이지를 찢어서 보관한다. 그리고 대신 그 자리에 포스트잇에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남긴다. 책을 읽다 중요한 장면 혹은 중요한 내용에서 원하는 페이지 대신 포스티잇과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소통하는 나의 어정쩡한 연대기...

「나무인형」.

헤밍웨이를 어떤 길 이름으로 오인할 정도로 무식하였던 여자는 책을 팔러 다니는 여자가 되었고 P는 그런 여자를 일기장 대신 자신의 일상을 들어줄 살아 있는 일기장으로 찜한다. 빈 깡통 같은 머리라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여자와 그 깡통에 자신의 일상을 새기려는 P 사이의 이야기이다.


장은진 / 빈집을 두드리다 / 문학동네 / 252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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