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척, 하기에는 너무도 혹독한 이 가족의 심연...
가족이란 것, 때로는 서로를 발목잡는 덫이 되기도 하고, 마구 할퀴는 쇠스랑이 되기도 하고, 상처 난 곳을 더 벌리는 집게가 되기도 하고, 그러다가 결국 서로를 잡아 먹는 아가리가 되기도 하고, 그렇게 처넣은 것들은 언제고 몸 바깥으로 배설되고, 그 배설물이 또 다른 벌레를 꾀어 들이고, 어느새 자신과 벌레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일까.
“벌레들 역시 저런 식으로 널브러져 체액을 뿜었다, 들판에서는 흔한 광경이었다 사타구니가 썩은 들쥐 주변에 깨처럼 흩뿌려진 벌레 떼, 몸통이 두껍고 꼬리가 가는 벌레들, 바닥을 기는 게 아니라 몸통을 들어 올려 한 번에 뛰듯이 움직이는 그런, 꼬리를 짓이기면 체액을 뿜어내며 뒹굴거리는, 나는 뒤로 물러앉았다 비리고 꿉꿉한 냄새가 거실에서 나는 건지 들판에서 밀려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p.223)
소설 속 형을 화자로 삼는 챕터의 글들은 혼란스럽다. 마침표도 쉽표도 제대로 찍혀 있지 않다. 혼란스럽기만 한 형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다.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하지만, 특히 이 형이 뇌까리는 문장들을 읽을 때 더욱 그렇다. 왜 그러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방법이 그것뿐이냐고 묻고 싶지만 이 허기진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러한 물음조차 이 형에게는 호사스러운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마귀는 말이다, 아무도 좋아하질 못하고 미워하기만 하니까 마귀다... 너는 형도, 엄마도 돌아가신 아버지도 다 좋아하잖냐? 마귀는 그럴 수 없어.” (p.72)
소설 속의 이 가족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소설의 시작은 어미를 죽이는 자식, 그러고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고스란히 잡힌 자식, 그렇게 제 형이 어미를 죽인 방을 치우는 동생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 가족이 원래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죽고, 원래 살던 곳에서 P시로 도주하고, 그곳에서 보험 설계사인 이모에게 도움을 받고, 이모의 손에 이끌려 절에 갔다, 나의 형 인근과 계단 위의 문정 누나가 충돌하고 병원에 실려 가던 그 순간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이 가족의 ‘모르는 척’은 시작된다.
“어머니는 다시 나물을 데치고 꽁치를 굽고 다진 돼지고기와 당근을 뭉쳐 동그랑땡을 부쳤다. 이모가 시침 뗀 얼굴로 식탁에 앉았을 때 가족 모두 모르는 척 수저를 나누었다. 흠집 난 부분을 굳이 긁어내지도, 무언가를 사용해 메우지도 않는 것. 그게 당시 우리가 선택한 최선이었다. 실상은 긁어낼 용기도 메울 여유도 없었던 것뿐이지만.” (p.105)
이제 나의 형 인근은, 그렇게 똑똑하였던 인근은 자꾸 다치기만 한다. 진짜 다치기도 하고 이유 없이 아프기도 하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나와 엄마는 애써 모르는 척 한다. 형의 몸이 다치고 마음이 다치고 영혼이 다치고 결국 그 존재가 사라져가는 것을 모른 척 한다. 그렇게 생긴 돈으로 욕망을 해결하고, 욕망의 해결은 또 다른 돈을 요구한다. 형은 서서히 껍데기만 남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그 껍데기마자 바스러지는 순간, 내가 가져다 놓은 볼링공을 높이 쳐들어 엄마, 아니 어머니의 머리를 향하여 겨눈다.
“처음에는 그래, 분명히 미안하고 안타깝고 고통스러웠을 거야. 당장 그만두게 해야겠단 마음이 들었겠지. 그건 진심이었을 거야, 그 정돈 나도 알아... 그런데 진심도 변해. 사람이니까. 그리고 결국엔 익숙해지지. 사람이니까... 제일 나쁜 건 있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야.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장 나한테 이득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려. 못 이기는 척, 모르는 척 받아들이게 돼. 그게 좀더 지나면 당연해져버리는 거야...” (p.200~201)
그런데 이 허깨비 같은 가족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구역질나는 관찰과 역겨운 표현 속에서 도무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 것인지 뜨악스럽다. 일가족 보험사기단의 말로라고 한다면 그 심연을 너무 헛헛하게 본 것일터, 그럼에도 지긋지긋한 표현들을 빼놓는다면 한 발자국 정도 더 나아갈 힘을 실어주는 소설은 아니다. 아쉽다, 모르는 척, 하기에는...
안보윤 / 모르는 척 / 문예중앙 / 286쪽 / 2013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