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인생에 은근히 치명적으로 작용하였던 사소한 사건들에 대하여...
일종의 연작 소설집인데 그 설정이 재미있다. 그러니까 남미의 어디쯤에서 여행자들이 인질로 붙잡힌다. 처음 얼마간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던 이 사건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혀져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일 정도가 지날 무렵 인질 구출작전이 벌어지지만 결국 인질들은 모두 사망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뒤 이들 범인 집단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행해졌던 도청 테이프에서 이들 인질들의 이야기 낭독이 존재하였음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다. 여덟 명의 인질들은 붙잡혀 있는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고 그 구속이 느슨해진 시점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차례대로 낭독회를 갖는다. 그러니까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그 인질들이 차례대로 낭독하는 여덟 개의 이야기이다.
「첫째 날 밤 지팡이」.
30년 근속 장기 휴가를 이용해 참가하였던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인 53세 여성의 이야기. 이 여성의 어린 시절, 집 근처 철공소에서 일하는 어리숙한 남자를 공원에서 만나게 되고, 이 절뚝거리는 남자를 위하여 지팡이를 만들어주었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 이십대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 혼수상태 속에서 이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절단당할 뻔 했던 왼발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였다.
「둘째 날 밤 메아리 비스킷」.
연수 여행의 옵션 관광으로 참가하였던 조리사 전무학교 제과 과정 교수인 61세 여성의 이야기. 그녀가 경험한 고약한 집주인의 이야기이다. 비스킷을 만드는 공장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불량품인 과자를 집으로 가져오고 이 집주인과 함께 먹는 행위를 의식처럼 치러낸다. 정리 정돈의 화신과도 같았던 집주인과 완벽하지 못해 낙오된 비스킷의 어렴풋한 은유가 재미있다.
「셋째 날 밤 B담화실」.
소설 연재를 위한 취재 여행 중이던 42세 남성 작가의 이야기. 퇴근길에 어느 외국인의 요청으로 길을 안내해주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주민 회관의 ‘B담화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어쩌면 이 작가는 자신의 생애 최초로 소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B담화실로 이 작가를 안내하였던 창구의 아가씨는 그 뒤로 다시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창구의 안내인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그런 아가씨는 안내인으로 있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 작가를 작가의 길로 안내한 아가씨의 실체는 온데간데 없게 되었다.
「넷째 날 밤 동면 중인 겨울잠쥐」.
국제학회 참석 뒤 귀국길에 여행 중이었던 34세의 의과대학 안과 강사인 남성의 이야기. 눈이 하나 뿐인 인형을 좌판에서 팔던 노인... 돈이 없어 그 인형 중 하나를 사려다가 포기하였던 어린 시절의 남성은 그러나 어느 날 우연히 이 노인을 등에 업고 계단을 오르는 시합에 참가하게 되고, 그 사례로 인형을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동면 중인 겨울잠쥐’ 인형이다.
「다섯째 날 밤 콩소메의 명인」.
국제 상품 전람회 참가 뒤 귀국길에 여행 중이었던 정밀기계 공장 경영자인 49세 남성의 이야기.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옆집 나이든 여인이 나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부엌을 빌려 콩소메를 만들기 시작한다. 내가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은 미라라고 여겼던 할머니를 보살피던 그 여인은 그렇게 콩소메를 만들어서 집을 떠나고, 집을 비운 사이 안부를 묻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여인의 흔적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그리고 얼마 후 옆집의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여섯째 날 밤 창 던지는 청년」.
조카딸의 결혼식 참석차 여행 중이었던 무역 회사 사무원인 59세 여성의 이야기. 어느 날 지하철에 아주 길다란 물건을 들고 탄 한 청년이 있었다. 나는 이 청년의 뒤를 따르다가 도심에 있는 창던지기 연습이 가능한 운동장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회사까지 하루 결근을 한 채 이 청년의 창던지기 연습을 몰래 훔쳐본다.
「일곱째 날 밤 돌아가신 할머니」.
남편이 부임지에서 귀국 중이었던 45세 주부의 이야기.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할머니를 닮았다는 소리를 몇 차례나 들었던 이 주부는 그러나 결국 자신은 결혼하고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식을 갖지 못하였다. 그렇게 할머니를 닮았다는 특징을 지닌 이 여성은 자신이 할머니가 되는 기회는 영영 갖지 못하게 되었다.
「여덟째 날 밤 꽃다발」.
여행의 관광 가이드인 28세 남성의 이야기. 자신의 어린 시절 의붓 동생이 아끼던 인형을 아파트 아래로 던저버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바로 그 곳에서 어느 여인이 추락 자살을 함으로써 오랜 시간 마음의 빚을 지니고 있어야 했던 이 남성은 그러나 어느 날 커다란 꽃다발을 자신의 일터로 가지고 왔던 손님을 통해 많은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아홉째 날 밤 가위개미」.
책의 인트로 부분을 읽고, 다음에 차례를 보다가 갸우뚱했다. 인질로 잡힌 것은 여덟 명인데 어째서 이야기는 아홉 개인 것이지? 그렇게 이 아홉째 날 밤의 이야기는 이 인질들의 이야기를 도청하고 있었던 22세 정부군 병사의 이야기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았던 이 지구 반대편 정부군의 어린 시절의 마을, 그곳을 방문하였던 일본인 학자들과 그 학자들이 이 남자의 할머니에게 남기고 간 일본어 책자의 이야기가 묘한 울림을 준다.
살다보면 맞닥뜨리게 되는 기묘한 사건들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기묘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기도 하고, 또 금세 잊었다가 일정 시간이 흐른 다음 문뜩 떠올리게 되기도 하는 그러한 사건들 말이다. 이런 사건들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어떤 변곡점을 미리 예측해주는 예고편이었다는 깨달음과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우리들 모두는 바로 이러한 사건들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떠올려보라, 내가 인질로 잡혀 있고 시간이 참 느리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오가와 요코 / 권영주 역 / 인질의 낭독회 (人質の朗読会) / 현대문학 / 223쪽 / 2012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