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처럼 갑자기 그러나 조용한 술렁임으로 다가왔다가...
*2013년 3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엊그제 에쿠니 가오리의 산문집을 읽는데 이노우에 아레노라는 소설가가 종종 등장하였다. 그리고 책장을 살펴보다 이 작가의 책을 발견한다. 언제 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읽지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가 꽤 칭찬을 하던데, 그러고보니 이 소설 나오키 상 수상작이네, 혼잣말을 하다가 집어든다. 남편이 있는 여자의 연애담이라, 소재가 고루하지만 일단 읽어 보기로 한다. 어쨌든 지금은 봄이고 잠시 살랑거리는 문장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작은 섬마을이다. 원래 바로 그 섬 출신이던 세이는 도쿄에서 만난 남편과 섬으로 들어와 살고 있다. 세이는 섬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양호 선생을 하고 있으며 그녀의 남편은 화가이다.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쓰키에씨와 그를 찾아오는 유부남 본토씨가 눈에 띄지만 이 또한 오랜 세월 진행되온 일이라서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다. 어쨌든 세이는 집 근처에 사는 아흔 넘은 노파 시즈카씨를 자주 찾아 보살피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사랑하는 수더분한 여인이다.
“나는 이사와가 오지 않으리란 걸 거의 확신했고, 그래서 안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사와의 모습을 간절히 찾고도 있었다. 인파 속에서 이사와를 닮은 뒷모습을 발견하면, 나는 얼른 눈을 돌렸다가 잠시 후 살짝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사와가 아니란 걸 확인하면서 몸속에서 작은 바늘이 밀어내는 듯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pp.153~154)
하지만 섬마을의 음악 교사로 이사와가 찾아오면서 그녀의 마음에 작은 술렁임이 생기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그 사람 앞에서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던 그 술렁임은 점차 그 파동을 키워간다. 그녀는 남편과 도쿄에 가 있는 동안 시즈카씨와 쓰키에씨를 생각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이사와를 끼워넣더니, 어느 순간 본격적으로 이사와를 염두에 두기 시작한다.
“...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일종의 ‘미시루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섬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고 있다고 하는 신탁 같은 것.” (p.16)
그렇다고 해서 농염한 불륜의 문장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소설의 앞부분, 아마도 이사와 선생 혹은 이사와 선생 같은 무엇을 여주인공이 발견하는 장면에서 ‘미시루시’라는 일종의 환영 같은 것이 잠시 등장하는데, 소설 속의 이 정체 불분명한 심정적 불륜이 바로 그렇다. 그러니까 사막에서나 발견할 법한 신기루에 가깝다. 신기루가 오아시스의 존재를 더욱 투명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처럼, 소설 속 불륜의 기운은 오히려 주인공 부부가 바르게 사랑하고 있음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터널을 파나갈 때 제일 끝에 있는 지점을 채굴장이라고 합니다. 터널이 뚫리면 채굴장은 없어지지만, 계속 파는 동안은 언제나 그 끝이 채굴장이지예.” (p.258)
이러한 설정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채굴장 끄트머리에서 발견하여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전달한, 그리고 주인공을 통해 남편에게 전달된 작은 목조 조각 십자가와도 부드럽게 연결된다. 일렁이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밀어 붙여서 터널을 뚫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파내려 갈 수 있는 그 끄트머리를 알고 멈춤으로써, 주인공의 마음은 긴장감은 고스란히 간직하되 아름다운 것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탄탄한 구성, 프로의 문체, 어른의 소설’이라는 선전문구나 ‘문장이라는 피로 문학의 몸을 다시 숨쉬게 만들었다.’는 나오키상 심사위원의 추천사에 필적하는 감흥은 없지만 적당한 위력을 갖춘 대중 소설임은 분명해 보인다. 바람 없는 날의 바다가 보여주는 고요한 출렁임, 스쳐지나가는 그 물의 술렁임에 몸을 맡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 바다로 휩쓸려 가지 않을 정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연애 소설쯤이라고 해두자.
이노우에 아레노 / 권남희 역 / 채굴장으로 (切羽へ) / 시공사 / 280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