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꽉 잠그려다가 오히려 헐거워진 사건 그리고 인물들...
최악은 아니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한다면 글쎄... 버려진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곳의 버려진 물건들을 사진 찍는 주인공 마인스 헬러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날 그가 공원 벤치에서 만난 어린 여학생 필라로 이어진다. 혹시 롤리타의 폴 오스터 버전인가 싶은 찰나, 마인스 헬러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고 그는 필라의 큰 언니 안젤라를 피해, 자신이 떠나온 곳은 뉴욕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 그는 그곳 주변에서 뭔가 죽은 듯한 분위기, 가난과 이민자들의 고된 삶의 서글픈 공허함을 발견했다. 은행도 서점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수표 교환소와 다 쓰러져 가는 공공 도서관밖에 없는 이 세상과 동떨어진 작은 세계에서는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흘러가서 사람들은 굳이 시계를 찰 필요도 없었다.” (p.142)
그렇게 헬러는 뉴욕의 빙 네이선을 찾는다. 헬러의 오랜 친구인 빙 네이선은 ‘홀로 버려진 낡아 빠진 어설픈 건축물’을 다른 두 명과 함께 점거한 채 살아가고 있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앨리스 버그스트롬, 그리고 부동산 관련한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엘런 브라이스가 그들이다. 소설은 이제 이들 점거자들의 일상으로 시선을 옮기고, 더불어 헬러의 아버지인 출판업자 모리스 헬러와 그의 친엄마인 배우 메리-리에게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소설은 계속해서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오고가며 이들의 상황들을 살피는데 주력한다. 남자 친구와의 삐걱거리는 관계로 힘들어하는 앨리스 버그스트롬이나 섹스에 목말라하며 누드 그리기에 집중하는 엘런 브라이스, 마일스를 향한 동성애적 사랑에 방황하는 빙 네이선이 있는가하면 한 번의 실수로 윌라와의 부부 관계에 위기를 맞는 모리스 헬러나 여배우로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메리-리가 작은 주인공들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오고가던 소설은 결국 무단점거하고 있던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치면서 마무리가 되어간다. 몇 년만에 뉴욕으로 돌아와 조금씩 부모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던 마일스는 경찰에게 폭행을 가한 채, 이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이복 형제였던 보비를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시작된 그의 방황은 범죄자가 될 위기에 처한 순간 정리가 되어가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여러 인물군상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폴 오스터의 번뜩이는 재치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 위기 이후 무너져 내리는 미국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출판사의 리뷰는 너무 일반적이다. 소설의 초반부에 나오는 헬러와 필라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된 《위대한 개츠비》가 미국의 좋았던 시기, 그러니까 현대로 옮겨 놓자면 금융 위기 이전을 이야기한다면 소설의 중반부 이후에 연거푸 등장하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는 금융 위기 이후의 절망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희망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그 구성이 조금은 식상하다고나 할까.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는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은 절망에 빠진 현대인이 품을 수 있는 희망의 (이 문장의 앞 부분에서 희망을 갖지 말자고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버전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절망이 제대로 다가오지 않으니 그 희망 또한 무겁게 다가서지는 않는다. 어딘가 헐겁게 끼워 맞춰진 톱니바퀴, 그래서 억지로 굴러가는 시계의 삐걱거림을 닮았다. 그러니 거기서 읽어내는 시간 또한 믿을 수 없다고나 할까.
폴 오스터 / 송은주 역 / 선셋 파크 (Sunset Park) / 열린책들 / 333쪽 / 2013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