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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31. 2024

에쿠니 가오리 《부드러운 양상추》

음식 이야기로부터 길어 올리는 추억의 시간들 몇 가지...

*2013년 3월 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가 자꾸 뒤로 밀리고 있다. 재미가 없어서는 아니다. 그리고 읽기를 멈춘 것도 아니다. 조금 두꺼운 탓에 침대에 누워 보는 책을 다른 책으로 선택하다보니, 이렇게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마음의 양식에 그치지 않고 몸의 양식이 되기에도 충분하니, 그런 면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이 가볍기 그지없는 푸드 에세이인 《부드러운 양상추》와도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하겠다. 


  사실 나는 먹는 행위에 대해 크게 예민하게 구는 편은 아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살기 위해 먹는 것도 아니고, 그저 먹기는 먹지만 먹는 행위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런 성향은 아내도 마찬가지여서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에도 먹는 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밥 때가 되면 무얼 먹을 것인지 상의하는 정도인데, 이런 경우에도 크게 의견이 충돌하거나 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 아내와 나는 먹는 것에 있어서 찰떡 궁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아내는 닭의 퍽퍽한 가슴살을 좋아하지만 나는 쫄깃한 다리살을 좋아하고, 아내는 오징어의 다리 부분을 좋아하지만 나는 몸통 부분을 좋아하고, 아내는 계란의 노른자위를 좋아하지만 나는 흰자위를 좋아하는 식이다.


  “봄이 오면 개를 산책시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우리 개가 보도 틈새나 가로수 밑동에 돋은 잡초란 잡초는 죄다 열광적으로 탐식하기 때문이다. 위생적이지 못하고, 먹어도 되는 잡초와 그렇지 않은 잡초를 구별할 수 있긴 한 건지 불안하니 먹지 못하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개는 전심전력으로 먹고 싶다고 호소하고, 다른 계절에도 잡초는 있는데 먹지 않는 걸 보면 함부로 무턱대고 먹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싶어 결국은 그냥 놔둔다.” (p.72)


  책은 에쿠니 가오리가 여행을 다니면서 맛본 음식 이야기로 대부분 채워져 있으며 간혹 함께 사는 남편과 먹은 음식 이야기, 또는 동생을 비롯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음식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주로 자신이 감흥을 본 음식 이야기가 실려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꽤나 긍정적인 이야기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음식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나로서는 작가의 글을 통해서는 도통 떠올리기 힘든 음식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답답하기는 하였다.


  “맥주는 시원하고, 클램 차우더는 뜨겁고 예쁘고 올바른 맛이 났다. 암, 클램 차우더는 이래야지, 하는 맛.” (p.206)


   그렇지만 위와 같은 문장, 그러니까 ‘클램 차우더는 뜨겁고 예쁘고 올바른 맛이 났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클램 차우더’가 무슨 음식인지 모르면서도, 으음 올바른 맛이 나는 클램 차우더라는 말이지, 하며 얼렁뚱땅 수긍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는 즐거움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책을 읽는 동안 먹는 것에 무관심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지나온 삶에 촘촘히 박혀 있는 음식 혹은 음식과 얽힌 기억들을 떠오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면발을 후루룩 빨아들이지 못하여 일일이 면을 끊어주어야 국수를 먹을 수 있었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나, 벽에 붙은 단팥소(앙꼬) 때문에 전날 우리들이 자신 몰래 붕어빵을 먹은 것을 알게 되어 대성통곡 하였던 다섯 살 무렵의 남동생, 어느 휴일 점심 오랜만에 먹는 그 맛있는 라면을 (당시의 라면은 일종의 특식이었다) 앞에 두고 다투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이미 불어터진 라면을 먹어야 했던 나와 여동생에 대한 기억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러한 기억들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으니 당시의 음식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재간은 없다. 음식에 예민하고 또 자신이 모르는 음식들을 접하면 그것을 메모까지 하는 에쿠니 가오리에 비하면 나는 음식과 관련해서는 단연코 미욱하기 그지없다. 생각해보니 먹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음식에 대한 나의 무감각은 반성해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은 또 무얼 먹어야 하나...



쿠니 가오리 / 김난주 역 / 부드러운 양상추 (やわらかなレタス) / 소담출판사 / 242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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