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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무라 미즈키 《열쇠 없는 꿈을 꾸다》

덤덤한 서술방식이 더욱 극명하게 만드는 생활밀착형 비극...

by 우주에부는바람

일종의 생활밀착형 비극을 보는 것만 같다. 일본 소설 특유의 나긋하고 경쾌한 문장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현하는 상황들은 거개가 끔찍한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고 덤덤한 서술 방식이, 이런 상황들이 바로 우리가 속한 마을이나 우리가 속한 조직 등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는 점을 더욱 극명하게 말하는 것만 같아 더욱 섬찟하다고나 할까.

「니시노 마을의 도둑」.

나는 자신의 마을로 이사를 온 리쓰코와 친하게 지낸다. 그 집에 놀러가고 그의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그 동생으로부터 좋은 감정을 전달받기도 한다. 하지만 리쓰코의 엄마가 가지는 도벽, 아마도 심리적으로 어떠한 순간에 그 도벽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듯한 리쓰코의 엄마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도벽에 대해 ‘아무 일도 없었던 셈’ 치는 마을 사람들... 그러나 소설은 참으로 선량한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이지 않은가, 라며 맺음하지 않는다. 이처럼 덤덤하게 진행되면서도 마지막 순간 읽는 이들의 마음에 돌맹이 하나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가 이 소설집의 소설들을 각별한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쓰와부키 미나미 지구의 방화」.

쇼코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집 바로 앞의 소방 분소에 화재가 났다. 그리고 소방 공제와 관련한 기관에 근무하는 쇼코는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가 공무원이며 의용 소방대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바야시 씨를 만나게 된다. 오바야시와는 미팅을 통해 만난 적이 있는데, 도통 마음이 가지 않은 상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데이트를 하기는 하였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화재와 관련한 오바야시의 행각... 오바야시의 행각도 행각이지만, 그러한 오바야시의 행각을 자신에 대한 애정 표현의 일환으로 치환시키는 쇼코의 마음의 행각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미야다니 단지의 도망자」.

처음에는 젊은 남녀의 갑작스러운 여행 쯤으로 읽힌다. 그러다가 조금 지나면 뭔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의 도피행각인가 싶다. 하지만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기억을 떠올리는 요지를 보며 이건 또 뭔가 싶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 이 모든 것이 왜곡된 사랑, 그리고 그러한 왜곡된 사랑의 무서움 속에서 완전히 망가져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게 된다. 끔찍하다.

「세리바 대학의 꿈과 살인」.

“나나 유다이처럼 명확한 꿈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야기하면 즐거웠다. 내가 저지른 실수에 모두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었을 때는 이토록 훌륭한 사람의 선의와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나와 유다이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사고가 정체되었다고 말했던 걸까? 그들은 그저 두 발로 땅 위에 굳건히 서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때까지 허세를 부리듯 일러스트 하나만 고집했던 내가 하찮고 시시한 존재로 느껴졌다.” (p.184) 교수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유다이의 헛된 꿈, 그리고 그 꿈에 저당잡힌 유다이의 삶, 에 다시 저당잡힌 듯한 유다이의 애인 미쿠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현실과 유리되어 있는 이런 것도 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꿈과 희망을 이처럼 어둡게 몰아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기미모토 가의 유괴」.

어느 날 딸 사쿠라를 데리고 백화점에 들렀던 요시에는 잠깐 사라진 유모차 때문에 완전히 정신을 놓고 만다. 핸드폰도 집에 두고 온 탓에 연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이 찾는 일을 백화점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요시에... 그리고 그 사이 요시에의 결혼, 그리고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젊은 여성들의 다양한 사고방식이 밝혀지는 가운데 사라진 유모차는 요시에의 집에서 발견된다. 초인적인 육아 스트레스와 이를 제대로 감당해내는 일의 어려움이 나름 기괴하게 그려지고 있다고나 할까. 물론 마지막에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금 일을 꾸미는 요시에를 보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하게 되는지...


츠지무라 미즈키 / 김선영 역 / 문학사상사 / 열쇠 없는 꿈을 꾸다 (鍵のない夢を見る) / 문학사상사 / 290쪽 / 20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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