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닉 혼비 스타일이 일으키는 가치 판단의 혼란...
경쾌하고 발랄하지만 그 저변에는 어찌 할 수 없는 냉소가 곁들여져 있고, 그러다가 문득 훈훈하게 웃기는 통에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작가 닉 혼비의 2001년 소설이다. 그의 소설로는 《하이 피델리티》와 《어바웃 어 보이》를 잇는 세 번째 작품인데, 전작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 역자의 평이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유머를 제대로 구현하는 독특한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각종 대중문화와 대중사회를 키워드 삼아 종횡무진하는 스타일은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번 소설의 화자는 톰과 몰리라는 어린 아이들과 데이비드라는 남편을 둔 이제 막 중년에 접어드는 여성 케이티이다. 남편과의 관계는 어떤지, 자신의 아이들과 자신의 관계는 어쩐지 등에 대한 상념은 자연스레 자신은 행복한가, 라는 의문으로 넘어가고, 이러한 의문과 자신의 섣부른 외도가 은연 중에 맞물리는 상황 속에서 케이티는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남편과 공유하고자 하지만 이또한 여의치 않다. 모든 것에 부정적인 시선과 냉소를 보내는 것을 특기로 하며, 바로 그 특기를 살려 신문에 바로 그러한 류의 칼럼을 쓰는 케이티의 남편 데이비드는, 또한 바로 그 특기를 살려 케이티의 의견을 묵살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리던 케이티는 결국 자신의 외도 사실을 스스로 말하게 되고, 데이비드는 케이티를 남겨 두고 집을 나간다. 하지만 며칠 후 집으로 돌아온 데이비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 낮 시간 동안 데이비드는 사무실에서 책을 읽는다. 저녁이 되면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숙제를 도와주고, 모두들 그날 하루 어떻게 지냈는지 하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한마디로 그는 이상적인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것이다... 데이비드는 바비 인형의 남자친구 켄의 행복한 기독교 신자판이 되어버린 거다. 물론 켄의 강인한 외모와 잘 다듬어진 몸매는 빼야 하지만.” (p.127)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딴지일보의 유명 칼럼니스트가 며칠 사이에 혜민 스님처럼 바뀐 것이다. 케이티의 외도 사실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가하면 거리의 노숙자에게 택시비까지 털어서 던져주고, 아들의 컴퓨터를 가져다가 지역 봉사 센터에 기증하더니, 급기야 마을 사람들을 집에 모아 놓고 거리의 청소년을 집으로 들이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이 급작스러운 변화가 케이티는 오히려 불편하다. 자신 또한 주변 사람을 돕겠다는 신념으로 의사가 되었고, 지금도 의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데이비드와 같은 급진적인 방식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의명분은 좋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어처구니 없는 이 좌충우돌하는 남편을 보며 케이티는 힘겹다.
“어떻게 하면 국가 평균임금 이상 버는 돈을 전부 사회에 환원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구상 중이야. 지금은 계산을 하고 있지... 참, 그리고 우리가 책을 한 권 쓸까 하고 있어... 제목은 ‘좋은 사람 되는 법How to Be Good’이야.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다루는 책인데, 제안 같은 걸 하는 거지, 뭐. 집 없는 애들을 입양한다든가, 돈을 나눠준다든가, 사유재산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할 지 하는 거...” (pp.336~337)
남편을 변화시킨 것은 굿뉴스라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능력을 지닌 이 사람을 집에 들이면서까지 단짝이 된 데이비드의 구상은 멈출 줄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실천도 어느 순간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것은 ‘거꾸로 하기’라는 프로젝트에서이다. ‘평생을 통틀어 가장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과의 소통을 꾀하는 이 프로젝트에서 굿뉴스는 자신과 사사건건 다투기만 하였던 여동생을, 데이비드는 자신이 괴롭혔던 학창 시절의 친구를 선택하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당신과 나는 몇 달 동안 이혼 일보 직전에 있었잖아. 이제는 결혼 생활의 문을 잠그고 열쇠를 밖으로 던져버리자고 작정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평생에 걸친 좌절과 서로에 대한 증오라는 저주를 서로에게 걸어버렸는지도 몰라...” (p.375)
위기에 빠진 부부와 가족을 중심에 놓고, 현대 사회의 중산층이 가지고 있는 허위와 가식이라는 얇은 포장을 들쑤시고 있는 소설이다. 가족을 중시하지만 그 가족들을 결속하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인 사랑이 얼마나 허구적인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자신이 굳건히 믿고 있던 가치 판단의 체계를단숨에 뒤틀어버린 데이비드나, 그러한 데이비드 앞에서 또한 가치 판단의 이상을 느낄 수밖에 없는 케이티, 이 두 사람의 소설 이후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다른 소설에 비해서는 그 흡입력이 조금 딸리는 것도 사실이다.
닉 혼비 / 김선형 역 / 하우 투비 굿 : 좋은 사람 되는 법 (How to be good) / 문학사상사 / 403쪽 / 2005, 2012 (2001)
ps. 이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2005년 《진짜 좋은 게 뭐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의 개정판이다. 헷갈리시는 일이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