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모 디 론도 남작은 '나무 위에서 살았고, 땅을 사랑했으며, 하늘로
1767년 6월 15일, 옴브로사의 저택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나의 형, 몇 달 전 열두 살이 된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는 달팽이 요리를 거부하며 식탁을 박차고 정원으로 나가더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원의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이를 비웃는 아버지와 식구들을 향해 다시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나의 형 코지모가 ‘나무 위의 남작’이 되는 그 시작은 이처럼 아주 사소한 저녁 식탁에서 비롯된 것이다.
“... 형은 나무들이 그렇게 울창하기 때문에 절대 나무에서 내려가지 않고도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가면서 몇 마일이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52)
나무 위 생활은 달팽이 요리의 거부로 시작되었지만 공작이 되기만을 바라며 세상의 눈치를 보는 남작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였지만 군대에 흠뻑 빠져있는 여장부인 엄마, 집 안에 은둔하며 수녀처럼 생활하지만 여러모로 꼬여 있는 누나를 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코지모는 이미 자신을 둘러싼 비이성적인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코지모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이 바로 화자인 ‘나’이다.
그렇게 소설은 열두 살에 나무 위로 올라간 코지모의 여덟 살 난 동생 ‘나’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간 코지모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조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가족과 코지모 사이의 의사소통 통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직접 코지모에게서 듣게 되는 이야기나 다른 사람을 통하여 듣는 코지모의 이야기 등이 ‘나’의 글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형은 광적인 이야기꾼이 되었고 이제는 형에게 정말 일어났던 일들로, 그것을 회상하면 지나간 시간, 섬세한 감정들, 권태, 행복, 불확실, 자만심, 자신에 대한 구토, 이 모든 것이 되살아나는 사건들과, 꾸며낼 수 있고 예리하게 잘라낼 수 있으며 꾸며낸 이야기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할수록 실제로 우리가 살면서 경험했던 것, 혹은 이해했던 것을 다시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그런 종류의 사건들 중 어떤 게 더 좋은 것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p.204)
숲이 우거져 있는 옴브로사에 살고 있었던 덕택에 이미 나무 타기에는 일가견이 있었고, 또한 나무 위로 올라간 뒤에도 옴브로사의 대부분 지역은 나무에서 내려 오지 않고도 돌아다닐 수 있었던 탓에 코지모의 나무 위 생활은 점차 탄력을 받는다. 나무를 타고 남작의 저택과 담이 맞닿아 있는 옆집으로 넘어가 코지모 최초의 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비올라와 연을 맺을 수도 있었고, 옴브로사 사람들과의 교류 또한 끊이지 않고 수행할 수 있었다.
닥스훈트 종 사냥개인 오티모 마시모와 함께 하면서 코지모는 터키 해적의 동태를 파악하기도 하고, 유명한 도둑인 잔 데이 브루기에게 책을 소개하며, 누나의 결혼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심지어 나무에서 배로 다시 배에서 다른 고장의 나무로 옮겨가서 그곳의 나무 위에 머물던 귀족의 무리와 교류를 하기도 한다. 코지모는 땅에 발을 디디지 않았을 뿐 끊임없이 땅의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였으며, 그러한 이해를 위하여 책을 읽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통해 당시의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편지를 나눌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내가 볼테르에게 ‘우리 형은 땅을 제대로 보고 싶은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런 대답을 듣기도 한다.
“쟈디, 세 테 쇨르망 라 나튀르 키 크레 데 페노멘느 비방, 멩트낭 세 라 레죵. (옛날에는 자연이 살아 있는 현상을 창조했는데 지금은 이성이 그 일을 대신하지요.” (p.239)
사실 소설은 카톨릭과 왕정이라는 구체제에 대항하는 계몽주의 철학이 기세를 올리고 있던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의 시대상에 대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코지모는 자신의 가족들로 대변되는 구체제를 버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며, 그곳에서도 귀족이 아닌 서민들을 돕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소설 속에서 예수회의 인물들이 우스꽝스럽거나 답답하거나 교활하게 그려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대신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코지모는 끊임없이 책을 탐독하며 (심지어 디도르의 백과전서까지 읽는다. 소설에 나오는 볼테르, 루소 등은 이 최초의 백과사전 편찬에 참여하였고, 당시 이 책은 몇 차례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하였다.) 코지모 디 론도 남작이 되고, 세상과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그래서 더욱 세상을 잘 이해하는 한 인물이 되었다.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 나무 위에서 살았고 - 땅을 사랑했으며 - 하늘로 올라갔다.” (p.360)
열두 살에 나무 위로 올라간 코지모도 결국 늙었다. 그리고 병을 앓는 코지모는 마을 광장에 있는 떡갈나무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잠시 불시착을 하였던 영국 기구를 붙잡고 하늘로 올라간다. 이 기이한 인물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비석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새겨졌다. 하늘과 땅, 그 사이의 나무에서 존재하였던 코지모는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고,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멋진 환상으로 갈무리 되어 있음에도 빛나는 이성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탈로 칼비노 / 이현경 역 / 나무 위의 남작 (Il Baroe Rampante) / 민음사 / 373쪽 / 1997 (1957)
ps.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탈로 칼비노는 때로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나무 위에서 살면서도 가족들과의 이런저런 관계를 유지하였던 코지모가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나무 아래로 내려 갈 수 없으니 그저 저택의 창문에서 이를 지켜보기만 하며,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비누 방울을 날리는 장면은, 그것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있다. 잊고 싶지 않아 옮겨 본다.
“우리가 어린애들이었고, 엄마가 언제나 너무 쓸데없고 유치한 우리의 놀이를 금지하던 그 옛날 같았다. 하지만 이제 어머니도 아마 처음으로 우리들의 놀이가 즐거우셨을 것이다. 비누 방울이 엄마의 얼굴에까지 내려앉자 엄마는 후 하고 불어 방울들을 터뜨렸고 웃으셨다. 방울 하나가 엄마의 입술 위까지 날아갔는데 터지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엄마에게로 몸을 숙였다. 코지모 형은 그릇을 떨어뜨렸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