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하였던 삶은 스러졌어도, 그 섬에는 그가 있다...
*2012년 11월 2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난 주말 제주도 여행 중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들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않기로 하고 서로 가고 싶은 곳을 한 두 곳 정도만 선정하기로 하였는데, 이곳은 아내와 내가 한 마음으로 선택했다. 신산하였던 그의 삶과 그러한 그의 삶을 투영한 듯 혹은 그 삶의 너머까지를 보여주는 듯한 그의 사진에 대한 나름의 관심이 둘 모두에게 있던 탓이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갤러리에 들렀고, 그의 작품집과 이 수필집을 사게 되었다.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는 눈을 흐리게 하는 색깔이 없다. 귀를 멀게 하는 난잡한 소리도 없다. 입맛을 상하게 하는 잡다한 맛도 없다.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는 그런 중산간 초원과 오름을 사랑한다.” (p.84)
1957년 생으로 별다른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사진을 찍던 김영갑은 1982년 제주를 방문하여 작업을 한 후 1985년부터는 아예 제주도에 정착한 채 사진 작업을 진행한다.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제주도의 중산간으로 한라산에만 집중되었던 사람들의 시선을 제주도 전역에 산재해있는 오름과 그 언저리의 평원들로 옮겨 놓았다. 제주도를 찾은 많은 이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곳, 바람기와도 같은 방랑기를 가졌던 작가는 그곳에 시선을 두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바람 가득한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순간순간 다가오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 길을 포기하고 다른 무엇을 선택한다 해도 그 나름의 고통이 뒤따를 것이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를 가나 방황하고 절망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분명 끝은 있을 것이다.” (pp.64~65)
물론 바람 많은 제주에서 방랑기 가득하였던 그가 편안하게 사진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중산간 시골 마을에 방을 얻어 눈치를 보다가, 허름한 움막을 지어 놓고 곰팡이 피는 필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그는 견뎌낸다. 제주도의 풍경을 찍기 위해서 그는 제주도에서의 삶을 이해하기로 작정하였고, 그래서 제주도에서 아예 살기로 하였으며 그렇게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살다보면 때때로 죽고 싶다는 말이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현실이 고달플수록 도피처를 찾는다. 그 최종 도피처는 죽음이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잊기로 했다. 죽음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늘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p.25)
그렇게 그의 작품 세계가 드디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할 무렵인 1999년 그는 루게릭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의 시작 부분에 담긴 위의 글에는 자신의 병에 대한 생각이 담겨져 있는데, 어떤 억울함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갖추기 힘든 소소한 위엄이 엿보인다. 물론 이 책이 만들어진 것이 2004년이니 진행된 병에 대항하려는 많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다음의 일이기는 하다. 그도 처음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민간요법을 따라보기는 하였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길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그가 일러준 대로 가지만 한참을 걷다 보면 점점 늪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p.190)
하지만 이러한 병을 알고 나서도, 병이 진행되는 과정을 자신의 몸으로 고스란히 맞닥뜨리며 근육이 사라지고 몸이 굳어가면서도 그는 두모악 갤러리를 만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2002년 8월에 두모악 갤러리를 오픈하게 되고, 제주의 사람들을 비롯해 제주를 찾는 많은 이들의 방문을 이끌어낸다. 그렇지만 갤러리가 자리를 잡아가는 와중에도 그의 몸의 쇠락은 멈추지 않았고 2005년 5월 29일, 4월의 세종문화회관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사진은 이미지의 미라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새의 생김새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새가 숲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 무리끼리 지저귀는 소리에 숲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 (p.136)
이제 그의 몸의 쇠락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미라처럼... 두모악 갤러리에 있는 그의 텅빈 작업실은 예전 그대로이다. 그가 온종일 바람을 버텨내며 담아낸 사진들이 갤러리 곳곳에서, 제주를 표상하는 풍광이 되어 우리들의 시선을 맞이한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분위기를 그의 사진 몇 장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음 번 제주도를 방문할 때 내가 가고 싶어할 곳은 자명하다. 그곳은 바로 김영갑의 사진 속에 있었다.
김영갑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Human & Books / 253쪽 / 2004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