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의 덫에 걸린, 삐걱거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버지 죽이기>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지닌 소설은 아멜리 노통브 식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탈출기쯤으로 읽을 수 있겠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들을 대략 상중하 정도의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면 중, 정도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노골적으로 제목에서부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미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있고,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 전개 또한 그러한 예측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현자들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현자보다 더 깊은 현명함을 지닌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물들의 의미를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p.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갖는 안정적인 스토리 라인과 긴장감을 높이는 캐릭터 구축,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나름) 반전이라는 매력적인 포인트가 여전하니 쉽게 읽힌다. 게다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과의 사랑에 빠진 독자들은 어쩌면 저자보다 더욱 현명하니,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갖는 의미를 각자가 알아서 포착하고 섭렵하는 기능을 발휘하리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소설은 마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소년 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남자들이 어머니가 사는 집을 거쳐 갔고, 그 와중에 태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알 수 없거나 아예 아버지라는 존재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조였지만 집을 나온 이후 마술을 배우기 위하여 만난 노먼 테런스와 한 집에 살게 되면서 확연히 바뀌게 되다. 조는 노먼으로부터 마술을 배우고, 노먼의 어린 아내인 크리스티니에게도 묘한 감정을 갖게 된다.
“... 조가 느낀 것은 질투보다 더 나쁜 감정이었다. 조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p.76)
그리고 이제 조는 ‘아버지처럼 자유롭게 어머니를 사랑하고 싶다’는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모습을 보인다. 십대 중반의 조는 이미 지역의 마술가로 여자들로부터 유혹을 받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거절한다. 조는 자신의 마술 스승이자 자신에게 아버지인 양 굴기도 하는 노먼을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리스티나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난 이제 여기서 첫 경험을 하게 될 거야.> 조는 2년이나 확신을 되뇌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이 장소가 조에게는 이상향으로 보였다. 섹스, 그것은 또 하나의 행성이었다.” (p.85)
그리고 드디어 버닝 맨 축제 (실제로 미국에서 존재하는 축제로, 블랙 락 데저트 사막에서 이루어지며, 소설 속의 크리스티나는 버닝 맨 축제에서 파이어댄스를 추는 무용수로 묘사되고 있다) 기간, 조는 코카인에 취한 크리스티나를 유혹하여 2년 동안이나 억제하고 있던 일종의 성인식을 치르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을 노먼이 보게 되며, 독자는 유사 부자 관계의 이들에게 큼직한 틈이 생기리라 여기게 된다.
“... 넌 그냥 네 아버지를 너무나 죽이고 싶었던 거야. 내가 그 사실에서 깨달은 것은 내가 정말 너의 아버지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를 감동시킨다는 거야. 그래서 네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찾아왔어. 내가 너의 아버지라는 것은 크리스티나아 함께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야.” (p.152)
하지만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노먼과 크리스티나를 떠나 조가 라스베가스로 간 이후에도 노먼의 아버지 노릇 그리고 크리스티나의 어머니 노릇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두 사람의 감정은 조가 있을 때보다 더욱 강력해진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이미 결별한다. 이오카스테는 죽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멀게 하였지만, 크리스티나와 조는 그렇지 않았다. 크리스티나는 계속해서 조를 안타까와했고, 조는 그저 라스베가스로 떠나 방탕해졌을 뿐이다.
“...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는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괴로움이 존재합니다. 바로 자기 아이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아버지의 괴로움이지요.”
그렇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갈라선 소설은 이후 노먼과 조의 관계를 더욱 비튼다. 이제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어떤 애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졌던 소설은 마지막 순간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어떤 애증으로 탈바꿈한다. (노먼과 조의 관계 그 이전에 이루어졌던 조와 또다른 남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 관계가 오히려 부자 관계였으며, 노먼은 그저 심리적인 허수아비였을 뿐이라는, 그러니까 이 소설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며 읽은 독자들 모두를 속이는 듯한 반전으로 아멜리 노통브는 아멜리 노통브 식의 역전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멜리 노통브 식으로 반전을 이루게 된다.
아멜리 노통브 / 최정수 역 / 아버지 죽이기 (Tuer le pere) / 열린책들 / 173쪽 / 2012 (2011)
ps. 노먼이 조에 대한 사랑을 부르짖을 때 조는 노먼을 만나기 이전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그를 더 아버지라고 여긴다며 모질게 구는데, 이러한 조를 바라보면서 갑자기, 《롤리타》에서 롤리타가 험버트를 만나기 이전에 만났던 퀼트,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퀼트에게 가기를 원하였던 롤리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