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가 드디어 지중해 이곳저곳에서 치르던 일종의 로마 내전을 모두 끝내는 데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채권을 발행하여 (로마에서 개선식을 치르며 카이사르는 시민들에게 골고루 돈을 뿌려댔다, 라는 책의 내용 탓이었을까) 회사에 여유 자금을 만들어내는 꿈을 꾸었다. 여름 내내 눈에 띄지 않았던 모기가 이즈음 꼭 한 마리씩만 나타나서 잠자리를 설치게 하였는데 오늘 새벽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꿈을 꾸다말고 깼다.
결국 모기를 잡지 못하였고 아내마저 깼다. 새벽 다섯 시가 넘은 시각이었지만 나는 편의점에서 모기를 퇴치하기 위한 도구를 사기로 했다. 첫 번째 편의점과 두 번째 편의점에서는 모기 퇴치와 관련한 물품들을 구입할 수 없었다. 가을이었고 그것들은 매대에서 철수한 상태였다. 세 번째 편의점에서 겨우 살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바깥에서 꽤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나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였다고 말했다.
몽롱하였고 그 상태로 김연수의 소설을 집어 들었다. 잠이 달아난 통에 그렇게 한 권을 누운 채로 모두 읽었다. 천정을 향해, 오른쪽의 아내를 향해, 왼쪽의 고양이를 향해 방향을 바꾸어 가며, 잠이라도 든 듯 뒤척이며 계속 읽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유치한 문구가 소설의 시작에 앞선 첫장에 실려 있었는데 마음에 들었다. 나의 현재는 이처럼, 나를 몽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유치한 문구를 필요로 하고 있던 참이었다.
소설은 입양아인 카밀라의 이야기이다. 우리들 모두는 탄생의 설화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명약관화 하여 설화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카밀라와 같은 입양아의 탄생의 설화는 그것이 희미하거나 애매하고 때로는 온전히 소실되어 있기 때문에 설화로서 충분히 기능할 여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그러한 설화는 몇몇 요소들의 삽입만으로도 변화무쌍하게 마음껏 줄기를 생장시키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 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pp.201~202)
하지만 카밀라의 인생은 위와 같은 우리들 인생의 평균율을 따라가지 못한다. ‘선의 인생’으로 회상할 수 있는 고립되어 있는 ‘점’들을 알 수 없거나 뒤늦게 발견한 ‘점’들이 수시로 다른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밀라는 자신의 엄마인 정은지의 존재는 분명하게 확인하였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정은지의 친오빠인지 아니면 정은지의 선생님이었는지, 계속해서 번복되는 자신의 인생으로 인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맨다.
카밀라, 동백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름으로 이십대까지 살고, 우연히 만난 유이치가 우연하게 자신에게 도착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담긴 상자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통하여 글을 쓰는 행위에 다다르고, 그렇게 쓴 글들이 『너무나 사소한 기억들 : 여섯 상자 분량의 입양된 삶』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고, 책에 실린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세계가 우리 생각보다는 좀더 괜찮은 곳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진(1988년경)’ 이라는 챕터에 관심을 가진 잡지에 의해 결국 한국의 진남이라는 고장까지 와서 자신의 탄생과 직면하게 되는 정희재의 이야기는 꽤나 몽롱하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없었을 테지요.” (pp.274~275)
위의 문구는 비밀이 밝혀지는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카밀라의 엄마인 지은의 친구가 인터뷰 내용이다. 다른 사람의 본심에 닿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날개가 없고, 하지만 날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본심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며, 그러니 가로막고 있는 심연에도 불구하고 그 심연을 뛰어넘기 위하여 고단한 여정을 감내하는 것일 터... 카밀라의 여정은 그렇게 몽롱하면서도 고단하다.
김연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 자음과모음 / 327쪽 / 2012 (2012)
ps. 소설에서는 몇 편의 시가 인용되는데, 그중 서정주의 시가 참 좋다. 그의 행적이야 두고두고 비난을 받아도 별 수 없지만, 그가 보여주는 우리말의 사용법은 그야말로 달인의 경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적이 더욱 아쉬웁기도 하다. 여하튼 그의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의 전문을 옮겨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