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삶의 숨겨진 풍광을 찾아, 편안하게도 가이드하는...
오가와 요코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이야기를 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 노고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뭔가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에는 존재한다. 그만큼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무엇, 이건 뭐지 하면서도 스스럼 없이 이야기 속으로 섞여 들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 힘을 작가는 내색하지 않는다.
「바다」.
여자 친구의 본가에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하여 찾아간 나의 이야기이다. 그곳에는 부모를 비롯해 치매에 걸린 듯한 할머니가 있고, 꼬마 동생이라고 불리우지만 ‘꼬마’라고 보기에 어려운 동생이 있는데, 소설은 그 동생과 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나의 이야기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그 밤에 나는 꼬마 동생과 함께 죽은 시늉을 하는 남쪽주머니쥐와 바닷바람을 통해서만 소리를 낼 수 있는 ‘명린금’이라는 악기를 알게 된다.
「향기로운 바람 부는 빈 여행6일」.
나는 6일짜리 빈 자유 여행 중에 60대 중반의 미망인인 고토코 씨와 한 방을 쓰게 된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6일 내내 고토코 씨와 함께 그녀의 오래전 옛 연인인 요한 씨가 있는 양로원만을 방문하게 된다. 45년 전에 있었던 고토코 씨와 요한 씨 사이의 연애담도 참 보잘 것 없지만, 마지막 순간 요한 씨의 죽음과 관련한 에피소드 또한 참 어처구니 없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로도 뚝딱 소설을 만든다.
「버터플라이 일본어 타이프 사무소」.
주로 의대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타이프 해주는 사무소에서 다섯 명의 다른 타이피스트와 함께 일을 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타이프의 철자가 부서지면 그것을 수선해주는 한 남자와 활자를 통하여 서로를 느끼게 된다. 어딘가 에로틱한 느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소설 말미의 작가 인터뷰 내용을 읽어보니, 관능 소설 의뢰를 받고 쓴 작품이라고 한다.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환상적인 느낌이면서 동시에 좀더 어둡다. 역시 에로틱은 좀 어두워야 잘 드러나는 것인가...
「은색 코바늘」.
소설집에는 엉뚱하게 엽편 소설이 두 개 실려 있는데 그 중 하나이다. 할머니의 추모 법요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기차에서, 할머니와 함께 떠오르는 은색 코바늘에 대하여 짧게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깡통 사탕」.
이 소설도 엽편이다. 40년간 버스만 운전하는 예순 다섯의 내가 이제 유치원 버스를 몰면서, 그 아이들을 상대로 사탕 깡통에서 적절한 사탕을 꺼내 준다.
「병아리 트럭」.
일흔 살의 미망인과 여섯 살 손녀가 사는 주택에 세를 들 게 된 40년 근속의 호텔 도어맨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엄마를 차례로 잃으면서 동시에 말을 잃은 소녀와 나는 곤충의 허물과 병아리 트럭이라는 존재를 통하여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드디어 병아리 트럭이 사고를 내며 길바닥에 병아리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 병아리를 보호하가조 한 소녀는 말문을 연다.
「가이드」.
이혼 후 가이드를 하는 엄마와 어린 소년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 머리에 남는 것은 불완전한 셔츠만을 파는 ‘셔츠 상점’ 그리고 손님들의 추억에 제목을 붙여주는 ‘제목 상점’이다. 완전하지 못한 셔츠를 파는 상점이니 손님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제로는 셔츠 상점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나, 추억이 없는 사람은 없고 그 추억에 제목을 달면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제목 상점의 주인인 노시인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으며 또한 어딘가 모자란 듯한 물건이나 사람을 자주 등장시키는 것은 오가와 요코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동시에 사소한 사건이나 상황조차 하나의 추억으로 만들고, 그 추억에 노시인이 제목을 붙이듯 이야기의 힘을 부여하는 것이 또 오가와 요코이다. 그렇게 작가는 우리들 삶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풍경을 ‘가이드’ 하고 있는 것이다.
오가와 요코 / 권영주 역 / 바다 (海) / 현대문학 / 183쪽 / 201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