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지배 하의 세상에 버젓한 나와 나 사이의 간극...
공공 장소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야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고 그것을 게시판에 올린 남녀가 있다. 일명 ‘미키&미치’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여자인 ‘미키’는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 게시판에 올린 것은 남자인 ‘미치’이다.) 소설은 얼굴에 모자이크가 된 채 올려진 사진과 동영상의 주인공을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제목이 ‘얼굴 없는 나체’가 아니라 ‘얼굴 없는 나체들’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익명의 게시판에 올려진 익명의 나체 사진과 동영상은 한 사람의 것이지만, 그 한 사람의 행위 안에는 우리들 현대인의 비밀스러운 속내가 다분히 섞여 있다는 점에서 한 사람의 것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어떤 부분이 있다. 때문에 소설의 제목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여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하이텔을 시작하던 시절을 잠시 떠올렸다. (의미심장하게도 7월 31일 자정을 기하여 하이텔을 전신으로 품고 있던 파란닷컴이 문을 닫았다. 이렇게 또 한 시기가 저물고 있음을 확인한다.) kosinski 라는 아이디를 만들고, 모두가 나를 kosinski 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모니터 속의 또다른 나인 kosinski 가 어색하였지만, 그 어색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곧 kosinski 라는 (당시에는) PC 통신 속의 ‘나’라는 존재가 갖는 새로운 인격을 느낄 수 있었고, 현실 속의 ‘나’와 PC 통신 속의 ‘나’ 사이의 갭에도 어느덧 익숙해져 갔다.
“‘미키’를 아는 사람은 ‘요시다 기미코’를 몰랐고, ‘요시다 기미코’를 아는 사람은 ‘미키’를 몰랐다. 어쩌면 개중에 양쪽 다 아는 사람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경우에는 양자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키’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나체만 알고 얼굴은 몰랐다. 얼굴은 항상 모자이크 너머에 있고, 그곳은 즉 실제 사회였다... 현실 사회와 접촉하는 것이 겉이며 외측이라면, 모자이크에 가려진 쪽은 안이며 내측이다. 이런 발상 때문에 인터넷 세계는 늘 간단히 내면화된다... 한편 ‘요시다 기미코’를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녀의 얼굴만 알고 나체는 알지 못했다. 옷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때 육체란 어느새 일종의 내면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p.14~15)
그리고 ‘kosinski’ 는 어느 날 PC 통신에 자신이 야한 소설을 써서 올렸다. 엄숙한 사회 분위기를 조롱하고 싶어 작성한 그 야설은 지금은 영화감독인 한 친구와 릴레이로 연재하였고, 작은 우리끼리 소모임에서 연재되던 야설의 존재를 누군가가 게시판에 공개되면서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물론 아주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고, 야설이라고 해봐야 그 수위가 일정 정도에 이르지 못한 탓인지, 야설을 연재한 소모임이 폐쇄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모두 ‘kosinski’ 가 한 일이었으며,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양으로보나 질로보나) 무겁기 그지없는 문학 계간지를 읽으며 (이제는 소설가가 된 친구들과) 형이상학적 수다 떨기를 즐겼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의 양상이 펼쳐진다. 인터넷 게시판 속의 ‘미키’가 그렇게 고궁에서 커다란 가슴을 노출시키거나 나무를 붙잡은 채 엉덩이를 내밀고 남자의 정액을 아무렇지 않게 입으로 받아 먹는 동안, 소설 밖의 ‘요시다 기미코’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소설에서는 그녀의 어린 시절의 자위 행위를 비롯해 또래보다 과도하게 발달한 가슴, 그리고 대학에서의 첫경험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현재의 ‘미키’를 설명하는 억지스러운 단초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성장 이력은 중학교 여교사 ‘요시다 기미코’의 평범함에 소속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언젠가 둘이서 일을 끝내고 비디오카메라와 바이브레이터가 널부러진 호텔 침대에 드러누워 있을 때, 국립대학 교수가 전철에서 치한행위를 저질러 체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가타하라 미쓰루’가 텔레비전을 향해 이런 말을 했던 것을 ‘요시다 기미코’는 기억하고 있다. 모자이크 처리로 얼굴을 가린 남학생 하나가... 그렇게 성실한 선생님이 그런 짓을 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라고 얘기한 참이었다... 바보냐? 늘 성실한 척하고 살아야 하니까 치한 짓이라도 해야 견디는 거지... 이 짧은 평언評言이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결국 그녀의 평소 생활도 그리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pp.73~74)
대신 ‘미키’의 맞은 편에 있는 ‘미치’, 그러니까 ‘가타하라 미쓰루’의 경우에는 소외된 어린 시절과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현재, 그리고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비뚤어진 인식 등의 면에서 평범하지 않다. 그는 ‘미키’ 같은 이가 평범함 속에 감추고 있는 어떤 면을 폭발시키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자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는 겉으로 드러난 외면 혹은 현실이 지닌 진실은 그야말로 외면하고, 드러나지 않은 나체 혹은 인터넷이라는 내면이 보여주는 사실만을 받아들이려는 자이다.
그러한 ‘미치’만을 타인으로 삼는 세상에서 ‘미키’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요시다 기미코’이지만 밤이 되면 러브호텔에서 혹은 자신의 집에서 AV 비디오에 나올 법한 온갖 해괴한 행위를 하는 ‘미키’가 된다. ‘요시다 기미코’는 ‘미치’ 앞에서 ‘미키’가 되고, ‘수치심을 유보하는 법’을 배운다. ‘사회가 기대하는 인간 일반의 모습’은 ‘미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게시판에 올려진 자신의 나체를 보고 흔들리는 ‘요시다 기미코’를 본 ‘가타하라 미쓰루’가 불쑥 결혼이라는 단어를 뱉는 순간, 둘 사이에 커다란 균열이 생긴다.
“그는 자기에게는 거짓으로 시작해 여자에게 도달하는 길이 없음을 자각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모습으로 이르는 수밖에 없다. 지금 그에게 그것을 실현시켜줄 만한 존재는 ‘요시다 기미코’ 말고는 없었다. 따라서 그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요시다 기미코’가 ‘미키’를 데리고 혼자서 그 거짓의 세계로 돌아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가타하라 미쓰루’의 존재가 귀중했던 것은 그가 ‘요시다 기미코’의 생활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하든 진정한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결혼이라니…….” (p.150)
어쩌면 둘 사이의 균열은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인터넷 속의 ‘미치’를 위하여 ‘가타하라 미쓰루’라는 존재가 필요한 남자, ‘요시다 기미코’를 위하여 인터넷 속의 ‘미키’가 필요할 뿐인 여자 사이에는 애초에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간극을 몰랐거나 모른 척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단어와 함께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분명해지면서 사건은 파국을 향할 수밖에 없다. 아니 ‘미키’와 ‘요시다 기미코’ 사이의 간극, ‘미치’와 ‘가타하라 미쓰루’ 사이의 간극 또한 이러한 파국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kosinski’와 ‘나’사이의 간극이 일으킨 사건들 또한 종종 있었다. 다만 그 사간들은 대부분 적당한 재미를 주었을 뿐, 그것이 파멸 내지는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세상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파국으로 치닫는 수많은 ‘얼굴 없는 나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얼굴 없는 나체’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든 세상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 이영미 역 / 얼굴 없는 나체들 (顔のない裸體たち) / 문학동네 / 173쪽 / 2012 (2006)
ps. 야한 내용이 많기는 하지만 작가가 의고체 문장으로 유명한 《일식》의 히라노 게이치로임을 명심하자. 야한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본분(?)을 유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너무 마음을 놓지는 말아야 한다. 아래와 같은 식이다.
“... 그 몸짓에는 의지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몸의 기억을 잇달아 찢어버리고 바깥으로 뿜어내 가로채가는 과잉이 있었다. 무시간無時間의 공간에 뿔뿔이 내던져진 방탕한 사지를 억지로 잇대어 시간 속에서 연속하게 만든 것처럼, 육체는 한곳에 마무르지 않고 시시각각 변모했고, 여자는 조잡하게 접합된 그 육체의 외양에 괴로워하는 듯 보였다...” (p.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