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천재 탐정의 약올리기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기 그지 없는...
장르 소설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휴일의 빗속에서 추리 소설을 읽는 맛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끊임없이 독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하면서 동시에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으니, 천둥과 번개가 요란한 바깥 날씨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본 추리 문학의 거장인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은 그만한 작가의 이름에 걸맞는 풍모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완성도의 작품이 작가의 처녀작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소설은 쇼와 11년 그러니까 1936년에 있었던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피살자인 우메자와 헤이키치의 수기로 시작된다. 화가였던 헤이키치는 당시에 일종의 밀실살인사건의 피살자였는데, 살해당한 헤이키치 보다는 이후 진행된 일련의 사건들, 그러니까 분가해 살던 헤이키치의 딸인 가즈에 살인 사건, 그리고 헤이키치의 네 딸과 헤이키치의 동생의 두 딸을 포함한 여섯 명이 동시에 죽었던 일명 아조트 사건으로 인하여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녀는 마치 꿈처럼 아름다웠고, 나 따위는 절대 붓으로 캔버스에 그려 낼 수 없는 정신의 무게, 힘 그리고 형태상의 기운을 지녔다. 그리고 나는 당장에라도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죽더라도 보고 난 후 죽고 싶다는, 기도를 넘어선 미칠 것 같은 갈망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이 여자는 ‘아조트(Azoth)’다. 철학자의 아조트(돌)이다. 나는 이 여자를 아조트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조트야말로 내가 삼십년 이상 캔버스 위에서 추구하던 이상의 여자이며, 내 꿈이다.” (p.14)
헤이키치는 자신의 살해 현장에 남겨졌던 수기를 통하여, 자신과 함께 기거하는 여섯 명의 여자들을 이용하여 일종의 아조트라고 할 수 있는 조각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자신의 딸과 조카들의 육체들 중 일부를 모아서, 하나의 완벽한 여인, 즉 아조트를 만들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들의 사체는 온전치 못한 형태로, 그러니까 헤이키치가 공언한 몸의 일부가 사라진 형태로 발견됨으로써 수기에서 밝히고 있는 엽기적인 살인 행각이 자행되었다.
“이 사건의 기묘한 점은 세 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졌지만, 세 사건에 각각 동기를 가진 자가 없기도 하고, 죽어서 존재하지 않거나 나중에 살해되었다는 점이다.” (p.240)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아조트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헤이키치는 살해당한 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아조트 살인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할 수 있는 헤이키치는 이미 죽은 뒤이다. 게다가 헤이키치 살인사건과 아조트 살인사건 사이에 엉뚱하게도 헤이키치의 또다른 딸인 가즈에 살인사건까지 끼어듦으로써 헤이키치를 중심으로 하여 얼키고 설킨 세 가지 살인사건이라는 거대한 미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제 이 말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사십오년 전의 사건은, 사건이 벌어진 1936년으로부터 사십오 년여가 지난 1979년, 소설 속의 현재 시점의 또 다른 인물에게로 바통이 넘겨진다. 점성술사이면서 아마추어 탐정인 미타라이 기요시가 그 인물이다. (이와 함께 홈즈와 왓슨의 관계처럼, 미타라이의 최측근이며 소설 속의 화자로 등장하는 이시오카가 있다.) 미타라이는 이시오카를 통해 이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45년이라는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아마추어 탐정들이 덤볐지만 해결하지 못한 그 사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처음 사건에 대한 설명을 너에게 들었을 때부터 계속 걸리는 게 있어. 그것이 뭔지 지금으로선 말로 잘 못하겠지만……, 분명히 기억이 있어. 이것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하면 이상하지만, 공통되는 듯한 일을 나는 알고 있어. 퍼즐 같이 그런 식의 직접적인 것은 아닐 테고, 뭔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건데. 그게 떠오르면…….” (p.284)
그리고 추리소설 속의 많은 탐정들 혹은 형사들이 그렇듯 이 명민하기 그지 없는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잘난 체로 무장한) 미타라이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대충 위와 같은 식으로, 독자들을 감칠맛 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는 뭔가 발견한 것 같은데 아직 독자인 당신들한테 말해줄 단계는 아니다, 라며 독자들의 부아를 돋우는 형태이다.
(실제로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저러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다시 한 번 소설을 앞에서부터 숙독하며 자신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샅샅이 뒤지며 전의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게다가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아예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밀기도 한다. 독자들은 이미 ‘완벽 그 이상의 자료’를 ‘아주 노골적인 형태’로 제공받았다며 희롱한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서... 이럴 때 작가 시마다 소지는 꼭 미타라이를 닮아 있다고나 해야 할까...)
“... 약품이나, 동경 138도 48분은 이른바 기둥을 장식하는 부조야. 1급 데코레이션이지. 그녀의 재능이 진짜였기 때문에 그 장식도 정교하고 생명력을 가져서, 우리는 건물 전체를 보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매혹당했어. 그래도 문제는 골조야...” (pp.498~499)
그래도 혹시 소설을 읽다 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도 있는 분들을 위해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로 제공하자면, 미타라이의 위의 말 정도가 될 것 같다. (물론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보지는 않지만) 여하튼 살해당한 인물만 여덟에 해결되지 세 가지의 사건과 흘러가버린 45년이라는 시간, 그러니 또 그 동안 죽어버린 여러 인물을 포함하여 등장하는 인물만 삼십여 명, 여기에 예전의 수기와 새롭게 발견된 수기를 비롯하여 점성술을 비롯한 각종 트릭과 수칙이 난무하니 읽는 동안 머리에 쥐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추리소설 매니아라고 한들, 독자인 내가 풀 수 있는 사건 정도로 이 소설이 전설이 되지는 않았겠지, 하는 편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소설 속 미타라이가 보이는 삐딱한 천재 탐정 기질에 약올라 할 필요도 없다. 소설 속 (왓슨의 역할을 하는) ‘감정에만 치우쳐서 그저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인 이시오카에 따르면, ‘이지理智로 움직여서 모가 난 전형적 인물이 미타라이’도 ‘돈이 없어서 끙끙거리고’ 있는, 그저 세상 살기에 힘들어하는 한 인간일 뿐이니 말이다.
시마다 소지 / 한희선 역 / 점성술 살인사건 (占星術殺人事件) / 시공사 / 567쪽 / 2006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