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운 《내 머릿속의 개들》

이야기 없는 노동의 하수인 대신 이야기 넘쳐나는 실업의 존재로...

by 우주에부는바람

 ‘인간성의 온전한 개화를 위하여 노동은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여야 한다.’ - 막스 베버


소설 속 주인공인 고달수가 인용하는 위의 문구는 막스 베버의 말씀이라고 한다. 노동하는 자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을 논하신 분의 말씀이니 고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노동이 ‘줄거리가 있는 긴 이야기’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분업화를 넘어 파편화된 현재의 노동은 긴 이야기로부터 계속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인간성 또한 피기도 전에 시드는 형편이 아닌가.


“... 어느 날 대학 동창 마동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날은 제가 존재A가 된 지 일 년 육 개월 하루째 되는 날이었는데, 존재A란 ‘지금 실업자인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현대인은 오직 존재A와 ‘조만간 실업자가 될 사람’을 뜻하는 존재B 두 부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p.8)


그러한 때에 우리의 주인공 고달수는 스스로 ‘존재A’라고 지칭하는 실업자군으로 편입되고보니 암담하기 그지 없다. 칠 년이나 사귀던 여자 친구는 갑작스레 나타난 치과 의사에게 넘어갔는데, 속 없는 고달수는 여자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한 대학 은사와 술잔이나 기울인다. 그런 고달수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 대학 때 함께 연극 모임을 했던 마동수이다. 마동수는 십여 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설치 미술가가 되어 나타났는데, 고달수는 그로부터 느닷없이 자신의 아내를 꼬셔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 너와 내가 힘을 합해서 너와 나와 내 마누라를 재배치해보자 이거지. 요즘은 국가마다 회사마다 구조조정이고, 집도 정당도 재건축이다 리모델링이다 난리고, 음식도 이것저것 마구 뒤섞는 퓨전 시대잖아. 그런데 남녀구도는 왜 안 된다는 거야? 세상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에너지의 끝없는 이동이라니까. 야, 타성의 틀을 깨고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펴봐, 자식아!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단 말이야!” (pp.36~37)


얼핏보면 얼마전 개봉하여 꽤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으나 이혼을 위하여 다른 누군가에 의뢰를 한다는 점에서...) 말도 안 된다고 버텼지만 결국 착수금조로 받은 천만원, 그리고 금방이라도 레슬링 선수로 돌변하여 달려들 것 같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말은 통한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저렇게 이론적인 뒷받침을 제공하는 마동수의 감언이설 끝에 결국 장말희와 고달수의 데이트는 시작된다.


“저는 술에 취할 때면 그녀와의 섹스를 상상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자신의 사고를 돈벌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운용하지 못한 존재A와, 자기 몸을 사랑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관리하지 못한 뚱보 여자의 섹스는, 우리 사회가 선택한 냉혹한 교환 체계의 충실한 반영이 아니겠는가... 아,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키스를 하는 건 가능했지만, 젤리 덩어리 같은 그 거대한 육체를, 그 기이하게 두꺼운 영혼의 집을, 그 탄소와 수소와 질소 덩어리를 껴안고, 그 물컹거리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p.87)


하지만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에 서툴러 실업자 신세인 존재A 고달수와 육중한 몸 전체가 고스란히 비효율의 표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장말희의 만남이니 이 또한 생산적인 결론으로 치닫지는 못한다. 고달수는 결국 자신의 의도를 장말희에게 말하고, 장말희는 그로 인한 충격으로 거식증에 빠진다. 그리고 이제 머릿 속 가득 ‘시도 때도 없이 웃고, 성내고, 교미하고, 졸고, 짖어대며 웃게 하고, 화나게 하고, 미치게 하는’ 개들로 고생하던 고달수는 바로 그 개들이 장말희를 뜯어 먹는 환상을 겪은 이후 자신을 살찌우기로 결심한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자 고달수나 필요 이상으로 뚱뚱한 장말희는 모두 사회적 표준에 미달하는 자이다. 아마도 작가는 바로 이러한 이들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노동이 아무 이야기도 갖지 못한 채 인간성의 파괴 행위로 치닫는 이 때에, 어쩌면 사회의 주류로부터 떨어져 나와 표준에 미달하는 자로 전락한 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조금 오버하자면) 또 다른 노동의 미래를 (옳고 그름이 아니라 에너지의 이동으로 귀결될 수도있는) 살펴보고자 한 것 아닐까... 물론 아직은 고달수의 머릿 속 개들처럼 혼란스럽기만 한 꿈으로 머물고 있지만 말이다.



이상운 / 내 머릿속의 개들 / 문학동네 / 207쪽 / 20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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