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굿바이 동물원》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의 정글을 뚫고 우뚝 솟아나는 처연함...

by 우주에부는바람

살다보면,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나이가 먹으면 이러한 혼란스러움이 잦아들 줄로만 알고 있다면 오산이다. 어떻게 된 것이 나이가 들수록 이러한 혼란은 더욱 자주 그리고 무겁게 찾아온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라는 생각은 종종,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람다운’ 삶을 저당잡힌 채 정글 속 동물처럼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게 추월당한다. 이러한 생각 끝에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 침잠의 시간으로 접어든다. 물론 이러한 생각 레이스의 끝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 그렇지만 나만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닐 거야, 우리들 대부분이 이렇게 살고 있을 거야...


“...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반달가슴곰 두 마리의 무거운 발걸음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다들 정말 힘들게 사는구나, 문득 먹고산다는 게, 남의 돈을 번다는 게, 그리고 성과급이라는 게 어쩌면 귀신이나 살인마보다 훨씬 더 무서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146)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굿바이 동물원》은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고 마늘까기와 인형 눈붙이기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이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동물원에 취직을 하게 되고, 그 동물원에서 여러 동료를 만나고 또 그들과 헤어지는 이야기이다. 의외로 단순하고 소설의 앞부분에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는 여러 고초들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탓에, 자칫 뭐 이따위 소설이 있어, 투덜거리며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작가의 소설에 조언을 해주는 편집자가 있었다면 아마 앞부분의 내용을 조금 줄이라고 했을지 모르겠다. 특히 송과장의 등장 부분은 애달프기는 하지만 잘라내었어도 상관 없지 않았을까...)


“고릴라로 일하는 동안은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고릴라기 때문에 사람 구실을 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인간미가 남아 있는 동물들이, 가족처럼 서로를 걱정해주는 고릴라 동료들이 좋았다...” (p.323)


소설은 내가 동물원에 취직을 하여 드디어 ‘내 직업은 고릴라다’ 라는 경천동지할만한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관리하는 일이나 할 줄로 알았던 나는, 내가 일하게 된 ‘세렝게티 동물원’의 모든 동물이 모두 나와 같은 인간이며, 각자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돈을 벌어가는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내가 맡게 된 역할은 ‘마운틴고릴라’이었으며, 그곳에는 부장급의 만딩고, 과장급의 조풍년씨, 대리급의 ‘앤’이 있고, 이들은 고릴라 우리 안에 있는 12미터 높이의 위험천만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있는 버저를 누름으로써 성과급을 늘려가는, 성실한 나의 동료들이다.


그리고 이들 만딩고와 조풍년과 앤에게는 이곳에서 일을 하기까지 나름의 사연이 존재한다.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이 악전고투의 사회를 통과해내는 무림 고수가 되고자 하였던 ‘앤’, 회사의 오물처리반으로 존재하며 동료들을 잘라내는 역할을 하였던 ‘조풍년’, 그리고 (세상에나) 오래전 남파된 간첩으로 내려와 접선자의 추적을 따돌려야 했던 ‘만딩고’의 사연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하나둘 나만을 남겨둔 채 동물원을 떠난다.


“오래전 나는, 울고 싶은 날에는 마늘을 깠다. 만딩고도 가고, 조풍년씨도 가고, 결국 앤마저 떠나가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 어쩌면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은 빨간 대야 가득 팅팅 물에 불은 마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마늘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울 수가 없었다.” (p.329)


소설은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로 충만하다.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고릴라가 되어야 했던, 고릴라가 되고 나서야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던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성적으로 희화화된 바비 인형이나 슈퍼맨 인형이 등장하고, 때를 맞춰 빌딩을 오르고 공을 터뜨려야 하는 마운틴고릴라와 반달가슴곰이 존재하는 소설은 시종일관 피식피식 웃음 터뜨리게 만들지만 곧 그 동물원 속의 동물 역할을 해내는 인간 존재들과 나 자신이 병치되고 있음에 화들짝 놀라게 된다.


“‘세렝게티 동물원’에는 마운틴고릴라가 한 마리 있다. 한 마리뿐이라 좀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바나나를 던져줘보시라. 사양하지 않고 받아먹는다. 또 여러분은 1시간에 한 번씩 마운틴고릴라가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명장면도 볼 수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기어오르는 마운틴고릴라의 모습은 여러분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을 선사할 것이다. 지금 그런 마운틴고릴라 한 마리가 ‘세렝게티 동물원’에서 여러분을 기다린다.” (p.343)


그렇게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동물원 속의 동물로 분한 등장인물들과 나 사이에 존재하던 유머의 벽은 서서히 사라져간다. 그러니 소설이 끝이 나는 순간 떠오르는 위와 같은 마지막 문장 앞에서 독자인 나는 처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삼복 더위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 차가운 바람이 휘익 지나간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마운틴고릴라 한 마리의 모습에는 당신들도 나와 다르지 않지요, 라며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하는 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강태식 / 굿바이 동물원 / 한겨레출판 / 352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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