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서쪽 숲에 갔다》

관계의 심연을 벗어나고자 당도하였던 곳에서 맞닥뜨린 숲의 심연...

by 우주에부는바람

숲을 배경으로 한 미우라 시온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읽은 것이 이달 초였다. 비슷하게 숲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숲이 가지고 있는 어떤 비밀스러움, 그리고 원래부터 숲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 숲과 이제 막 대변하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설정은 비슷하지만 미아루 시온의 소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고 있다면 편혜영의 소설은 어딘가 불온한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미스터리인 채로 사람들을 숲에 남겨 놓은 형국이다.


“숲은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수동적이고 정태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숲은 살아 있었다.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가 하면 숨구멍을 꽉 조였고 나무 사이로 길을 내주는가 하면 나무를 내세워 길을 막았다...” (p.332)


소설은 모두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첫 번째는 사라진 형을 찾는 이하인의 이야기이다. 변호사인 이하인은 숲의 관리인으로 있다가 사라진 이경인의 흔적을 쫓아 숲에 당도한다. 사실 그저 시간상으로 자신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형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이경인에게 이하인은 큰 관심이 없다. 그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의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실낱같은 인간적 도리에 대한 책무라는 생각으로 형을 찾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형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숲에 대한 연구소의 진선생의 태도는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이하인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형 얘기를 하면서 모르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형에게 남은 감정이 책임감이나 죄책감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하인은 폭력적이고 비열하며 걷잡을 수 없이 낙오한 형을 여전히 혐오하고 있었다. 형을 보지 못하는 동안 평화로웠고 형이 다시 나타나자 평화가 깨졌고 형이 미래의 평화까지 위협할까 봐 겁이 났다.” (p.37)


이어지는 2부에서는 이경인 이후 새로운 숲 관리인으로 들어온 박인수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알콜 중독자이면서 아내와 아들 세오를 데리고 숲으로 들어온 박인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가 2분의 전부이다. 전체 소설에서 정확히 3분의 1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데 왜 그렇게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어찌보면 도시로부터 버림 받은 사람이라는 점, 진실에 가까이 다가섰기 때문에 숲으로 사라져야 했다는 점 등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사라진 이경인을 대신하여 그 이경인을 이야기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필요하게 늘어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나한테는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 숲이에요. 박인수 씨한테 화가 나는 건 그거예요. 내게는 더없이 좋은 곳인데 박인수 씨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타락하고 부정한 곳이 되어버렸어요.” (p.325)


마지막 3부를 통해서 이제 이야기는 정리 단계에 들어간다. 한때 벌목꾼으로 일을 했다가 이제 진선생의 도움으로 마을에 정착하여 세탁소를 하는 최창기, 술집을 하는 이안남, 서점을 하는 한성수가 가지고 있는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들과 숲, 이들과 과거의 관리인과의 연결고리를 쥐고 있는 것이 진선생이라는 것이 명확해지는데, 이미 소설의 전반부와 중반부에 워낙 많은 복선으로서의 뉘앙스를 뿌려 놓았으니 그 긴장감이 높지 않다.


“... 그가 지켜야 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은 진과 이 숲과 어떤 식으로든 ‘함께’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의 삶은 독립적이고 자립되어 있었으나 그들 모두의 삶의 삶은 숲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삶도 독립적이지 않았다.” (p.342)


소설에서 숲은 어떤 미로와도 같다. 그것은 우리들의 삶이 간직하는 미로와도 같다. 숲의 미로는 그 출구를 모르기 때문에 어떠한 심연이기도 한 것이며, 그 심연은 우리들 인간의 어두운 속내가 드러내는 어두운 근성과 닮아 있다. 우리들이 제아무리 그 심연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여도,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는 도시를 떠나 숲에 당도하였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소설 속의 숲 (혹은 숲을 둘러싼 인간)은 도시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하다.



편혜영 / 서쪽 숲에 갔다 / 문학과지성사 / 365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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