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한 불편함의 대부분은 아마도 전작인 <다크 나이트>와의 비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이라는 기존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벗어나 심도 깊은 존재론으로 관객을 이끌던 전작을 생각하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다시금 블록버스터 본연의 문법으로 돌아갔다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배트맨의 허리를 꺾어 버리는 베인의 육체적인 힘이 보여주는 흔하디 흔한 악마성이 아니라, 선함을 자처하는 배트맨을 향하여 끊임없이 너의 속에 있는 악마성을 인정하라고 꼬드기는 절대악의 현현인 듯한 조커의 모습인데 말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크리스토퍼 놀란을 마구 몰아붙이기는 힘들다. 조커는 그야말로 죽었고, 조커를 연기한 히스 레저가 죽었으니, 살려낼 방도도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다크 나이트>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허비 덴트가 어떤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를 품었지만 이 또한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커는 죽었지만, 조커가 끊임없이 상기시키고자 했던 바를 허비 덴트라면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었겠지만, <다크 나이트>는 오리지널이 없는 <매트릭스>류의 영화와는 다르지 않은가. (사실 원작 만화를 제대로 보지 않았으니 영화와 만화 원작 사이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감독도 이런 부분에 신경이 쓰였는지 기존의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깜짝 반전을 삽입하는 시도를 한다. 시리즈 역사상 최강의 악인이라는 (힘으로 그렇다는 이야기겠지...) 베인에게 영화내내 집중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마지막 순간 그 배후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로 관객에게 한 방 먹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코미디부터 공포물까지 모든 장르에서 유행하고 있는 반전, 반전, 반전은 (시나리오 작가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려 있으니, 이 정도의 반전은 살짝 휘청이는 정도나 될까, KO 펀치로는 역부족이다.
사실 베인이 증권거래소를 장악하는 부분까지는 어떤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금융자본주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증권거래소를 타깃으로 잡았다는 것이 주는 뉘앙스가 여러모로 강했기 때문이다. 배트맨 이전에 브루스 웨인은 기업 총수이고, 어찌 보면 이들은 현대 사회의 또다른 의미에서의 악이고, 악의 대변자인양 포장된 베인이 바로 그 현대 자본주의 사회 병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돈, 그 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거래소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말이다.
게다가 이후 베인이 장악한 도시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리 자체를 도시의 하층민들에게 (물론 여기에는 각종 악인들이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맡긴다는 설정 등을 고려하면, 조금만 시나리오를 그쪽 방면으로 발전시켰다면 조커가 선과 악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매스를 들이밀었던 것처럼 베인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는 선한 얼굴과 악한 얼굴이라는 이중성을 부각시키는 것에 성공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배트맨 비긴즈> 시절의 라스알굴을 다시 등장시키고 (이로써 이 영화가 크리스토퍼 놀란판 배트맨 3부작의 완결편이라는 사실을 굳건히 하면서), 느닷없이 허리 꺾인 크리스찬 베일의 재활을 부각시키고 (모든 영웅에게는 비 온 뒤에 굳어지는 땅과도 같은 위기극복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마지막으로는 고담시의 경찰청장 고든의 후계자에서 배트맨의 후계자로 형질을 변환시키는 블레이크 형사를 통하여 암시하며 (너무나도 영화자본주의적으로 계산된, 이런 말이 있지는 않겠지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런데 빠짐없이 꽉 차 있어 안정되고 정석인 플레이를 보는 그 느낌이 오히려 못마땅하다. 선별된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만든 훌륭한 음식이지만 이미 많이 알려진 레시피를 이용하고 있으니 예측 가능한 맛이 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요리를 먹는 동안에도 요리를 먹은 뒤에도 그 정체를 궁금해 하고 오랜 시간 그 맛을 잊지 못했던 (오래전 적었던 <다크 나이트>의 리뷰를 읽어보니 ‘블록버스터가 가질 수 있는 예술성의 획기적인 버전’ 이라고 적어놓았다) 전작과는 (물론 훌륭한 음식이었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지만) 그런 점에서 분명 다르다.
여하튼 이제 또 하나의 시리즈가 끝이 났다. 하지만 분명히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이 보여주었던 시리즈의 완결성과는 달라 보인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또 다른 시리즈를 향한 비즈니스의 문호를 노골적으로 개방해 놓았다. 능력 있는 자라면 마땅한 자본을 찾아 마음껏 로빈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 물론 이쪽에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매트릭스>의 프로그래밍된 세상이나 <반지의 제왕>의 중간계와 달리 ‘고담시’는 지금 현재도 우리 주변에 고스란히 존재한다고, '고담시'의 고민 또한 여전하다고, 그러니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쉽사리 끝을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The Dark Knights Rises) /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크리스찬 베일, 게리 올드만, 조셉 고든 레빗, 앤 해서웨이, 마리옹 꼬띠아르, 마이클 케인, 모건 프리먼 출연 / 164분 / 20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