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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명화의 재탄생》

'숨은 그림 찾기의 재미' 를 넘어 '새로운 재창조의 영감' 으로...

by 우주에부는바람

꽤 재미있는 기획 예술서이다. 우리들 생활 속에 산재해 있는 여러 대중문화의 결과물들을 들여다보면서, 그것들에 아우라를 제공한 원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명화의 재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미술 혹은 미술품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을 http://blog.naver.com/goldsunriver 라는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저자는 (동시에 저자는 한 잡지의 문화부장이기도 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품들을 읽어내는 작업을 지금도 진행 중이다.


“... 현대 대중문화 속 명화의 재탄생은 때로는 원작의 함의를 거스르면서, 때로는 그것을 이어받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때로는 전혀 다른 제3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계속 진행된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우리는 이제 미술관에 걸려 있는 원본보다 그 것이 대중문화로 재탄생한 이미지에 더 익숙하다. 미술 작품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존재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인식됨으로써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면, 대중문화 속에 재현된 이미지는 그 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서 원본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이 언급한 시뮬라크르의 선행이라고 보아야 할까.” (p.8)


사실 우리들은 예술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는 별개로 이미 예술품 자체 혹은 변곡된 예술품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거나 그렇게 변곡된 예술품들의 진위를 꼭 확인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엔젤리너스 커피전문점의 아이콘인 천사가 라파엘로 산치오의 <시스터 마돈나>의 그림에 나오는 여러 천사들 중 하단에 나오는 장난스러운 두 명의 천사 중 한 명의 모습이라거나, 김연아가 선보인 쇼트 프로그램 <죽음의 무도>에서의 마지막 포즈는 카르로스 슈바베의 <무덤 파는 일꾼의 죽음>에 등장한 죽음의 천사의 포즈를 닮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확실히 재미있지 않은가.


이러한 원본의 복제 혹은 그 파생은 특히 대중문화의 부문에서 특히 많이 살펴진다. 영화의 경우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많은 부분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재단화> 속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고, 헨리 퓨젤리의 <악몽>은 영화 <프랑켄슈타인>과 <고딕>의 포스터에서 축소된 채 재현된다. 또한 소설과 영화로 모두 만들어진 <레드 드래곤>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 <거대한 붉은 용과 태양을 입은 여인>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으며, 영화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 전사들의 패션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에 등장하는 전사들의 패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음악의 경우에는 그 앨범 커버에서 원본 그림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딥 퍼플의 앨범 <딥 퍼플>일 것이다. 이 앨범의 커버 그림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세속적 쾌락의 동산>의 일부를 그대로 커버로 사용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은 마크 라이덴이 작업한 마이클 잭슨의 앨범 <데인저러스>에도 그 일부가 차용되었다. 이와 함께 블러의 앨범 <블러:더 베스트 오브>의 앨범 커버는 앤디 워홀이 자신의 작품 <마이클 잭슨> 등에서 보여준 기법이 차용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책에서는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에서 네로가 마지막 순간 보는 그림이 바로 페터 파울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서 내리다>이고, <토토로> 등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내리는 비의 표현법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에서 살펴볼 수 있으며, 순정만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꽃 장식의 원조는 알폰스 무하의 <꽃>에서 찾을 수 있고, 피트 몬드리안의 <큰 빨강 색면과 노랑, 검정, 회색, 파랑의 구성>과 같은 그림은 각종 가구, 패션에 이어 담배갑에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통하여 원본 예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예술품들을 살피고 있다.


이처럼 작가가 제공한 ‘숨은 그림 찾기의 재미’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작가는 이 책을 통하여 독자들이 좀 더 나아가 주기기를 바라고 있다. 독자들 스스로가 원본이 잘못 해석되고 있는 사례를 찾아본다거나 한 걸음을 더 나아가 독자가 직접 나서서 이러한 명화를 ‘새로운 재창조의 영감’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고 있다. 일종의 수준별 책 활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물론 나와 같은 고전 명화에 대해 일면식인 독자는 그저 일 단계 정도에서 멈출 생각이다. 그 이상은 아직 무리이다.



문소영 / 명화의 재탄생 : 라파엘로부터 앤디 워홀까지 대중문화 속 명화를 만나다 / 민음사 / 273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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