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하루키의 발랄하고 흐지부지한 산문 미학...
*2012년 7월 14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30대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동안 최근 그의 다른 산문집이 출가된 것을 알았고 호기심이 생겼다. 과거의 하루키의 소설과 현재의 하루키의 소설 사이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쓰는 산문에서도 그러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딱히... 삼십대 시절의 하루키와 이제 육십대에 접어든 하루키가 쓰는 산문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삼십대의 하루키가 육십대의 하루키를 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육십대의 하루키가 이십대들이 즐겨보는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들은 (산문집은 앙앙이라는 잡지에 일 년 동안 연재된 에세이를 모은 것이며, 이미 십여 년 전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제목으로 당시에 연재되었던 에세이 모음집을 책으로 출간한 바 있다) 삼십대의 하루키가 보여주던 발랄함을 여전히 비슷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람이란 나이에 걸맞게 자연스럽게 살면 되지 애써 더 젊게 꾸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애써 자신을 아저씨나 아줌마로 만들 필요도 없다. 나이에 관해 가장 중요한 것은 되도록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 꼭 필요할 때 혼자서 살짝 머리끝쯤에서 떠올리면 된다.” (p.112)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에세이가 보이고 있는 일련의 일관성은 어쩌면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하루키의 일상적인 스타일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젊음이나 늙음에 대하여 크게 의식하는 대신 (물론 필요할 때는 떠올린다고 하지만) 자유롭게 선택한 소재를 편안하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러한 에세이 쓰기가 무원칙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니 아래와 같은 하루키만의 에세이 원칙은 잘 지켜지고 있다.
“... 에세이라는 것은 내 경우, 본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미도 아니어서 누구를 향해 어떤 스탠스로 무엇을 쓰면 좋을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대체 어떤 걸 쓰면 좋을까 하고 팔짱을 끼게 된다.. 그렇긴 하지만 내게도 에세이를 쓸 때의 원칙, 방침 같은 건 일단 있다. 첫째, 남의 악담을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귀찮은 일을 늘리고 싶지 않다). 둘째, 변명과 자랑을 되도록 쓰지 않기(뭐가 자랑에 해당하는지 정의를 내리긴 꽤 복잡하지만). 셋째, 시사적인 화제는 피하기(물론 내게도 개인적인 의견은 있지만, 그걸 쓰기 시작하면 얘기가 길어진다).” (pp.32~34)
이러한 원칙들이 잘 지켜지는 것과 동시에 다수의 에피소드들이 (저자는 소설을 쓰는 동안 여러 개의 서랍을 두고 그곳에 소설과 필요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놓는다고 하는데, 그 것들이 소설에 다 소용되지는 않으니, 나머지 것들은 에세이의 에피소드들로 활용된다고 한다.) 아주 편안하고 위트가 넘치는 문장들로 다뤄지고 있다. 과거 하루키의 소설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형식보다는, 이제 그 내용의 완성도에 좀 더 치중하는 듯한 근간의 하루키 소설들과는 다르게, 어딘가 ‘흐지부지’하고 ‘용두사미’여도 충분히 용서받으리라는 자신감이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넘친다고나 할까.
“... 돌발질문을 받은 노인은 당황하여... 글쎄, 어떤 채소일까. 그렇지, 으음, 뭐 양배추 같은 거려나? 하고 얼버무려 얘기는 그만 흐지부지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나는 대체로 이런 용두사미식의 대화를 좋아해서, 이 영화에 호감이 생겼다...” (p.12)
무라카미 라디오 첫 번째 권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도 읽기에 나쁘지 않다. 말 많은 요즘 라디오에서 무수하게 생산되는 이야기들이 하루키 식으로 정제되어 있는 느낌이다. 포복절도할 만큼은 아니지만 재미도 있다. 살짝 키득거릴 수 있는 정도이다. 부러 교훈을 찾고자 한다며 교훈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다. 아마도 하루키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나도 젊은 시절에는 쉽게 버럭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레짐작 하거나 사실을 오인하여 화를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좀더 잘 알아보고 화를 내야겠군’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무슨 일인가로 확 열이 받아도 그 자리에서는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고 한숨 돌렸다가 전후 사정을 파악한 뒤에 ‘이 정도라면 화내도 되겠어’ 싶을 때 화를 내기로 했다. 이른바 ‘앵거 매니지먼트’다... 실제로 해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절절 끓던 감정은 대개 가라앉는다... 덕분에 인생의 트러블이 꽤 줄었다. 싸움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이건 화를 내는 게 당연해’ 라고 다시금 확인한 몇 안 되는 사례에 한해서는 냉정하게 언제까지고 계속 화를 낸다.” (p.44)
물론 일부러 교훈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와 닿는 내용이 (아주) 드물게 등장을 하기는 한다. 이럴 때는 이럴 때 대로 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겠다. 나이 든 자의 위용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저절로 나이 든 자의 현명함이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꼭 읽어야만 한다고 독촉할 수는 없겠으나, 이 글이 연재되었다는 잡지 <앙앙>을 완독하는 것에 비한다면 훨씬 나은 독서쯤은 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 오하시 아유미 그림 / 권남희 역 /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 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村上ラヂオ(2)おおきなかぶ,むずかしいアボカド) / 223쪽 / 2012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