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책은 끝도 없다. 어디선가 새록새록 솟아난다. 그의 소설은 거의 읽었다고 보지만, 산문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하루키는 아주 많이 쓰는 사람이다. 몽환적이며 유머러스하지만 (물론 지금은 조금 변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능숙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아래와 같은 챈들러의 글 쓰는 방식을 좋아한다고 호언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편이라면 그 많은 글이 생산되는 이치를 짐작해 볼 수도 있다.
“...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이기 때문에 전혀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날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 비록 한 줄도 써지지 않더라도 어쨌든 일단 앉으시오, 그 데스크 앞에 앉으시오, 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아무튼 그 데스크에서 두 시간 동안 버티고 앉아 있으시오, 라고... 그 사이에 펜을 쥐고 뭐든 글을 써보려고 노력하거나 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대신 다른 아무 일도 해선 안 되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넘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와 함께 놀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해선 안 된다.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태세를 갖추고 오로지 딱 버티고 앉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아무것도 쓰지 않더라도 쓰는 것과 똑같은 집중적인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비록 그때에는 한 줄도 못 쓴다 하더라도 반드시 언젠가는 다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해하며 쓸데없는 짓을 해봤자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라고 하는 것이 챈들러의 방식이다...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대체로 좋아한다. 그 자세가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pp.324~325)
이 책은 사실 웬일인지 하루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구매한 것을 내가 냉큼 먼저 집어 들어 읽었다. 우리 집에서는 다행히 이런 정도의 새치기는 용인된다. 이처럼 두 사람의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따로 산다. (하지만 배달은 언제나 우리 회사로 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들고 집으로 간다.) 그리고 상대방이 구매한 책을 살짝 들여다보며 재밌겠다고 말하거나 이번처럼 먼저 새치기 하여 읽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상대방이 구매한 책에 대해 (그러니까 상대방의 책 선택의 취향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경우는 없다.
“유행하는 옷을 제대로 찾아 입는 것은 꽤 신경이 쓰이는 일이며 (물론 돈도 많이 들어간다), 그것보다는 나는 스포츠를 하거나 식생활을 생각하거나 하는, 어느 쪽이냐 하면, 신체적인 면에서의 자기 관리 쪽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이것은 개인적인 성향 문제여서 어느 쪽이 옳고 뛰어나다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철학을 통해서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양복을 통해서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것은 어차피 개인적인 문제다.” (p.47)
그런 점에서 우리 부부는 살짝 하루키를 닮아 있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리얼리즘 소설이 아직 대세이던 시절, 리얼리즘 소설을 대세로 알고 지내던 문학회에서 함께 활동한 나와 아내가 그 당시 다른 사람보다 이르게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던 것도, 어쩌면 그의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는 쿨한 태도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는 두 사람의 취향에 나름 차이가 생겼다. 그러니 서로가 구매하는 책이 겹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고, 책이 좀 더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중이다.
“우리 집에 책이 점점 늘어나는 관계로 얼마 전 책장을 샀다. 직업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책이라는 건 자꾸만 늘어나기 마련이다. 화가 나서 3분의 1 정도는 팔아버릴까 생각하고 아침부터 선별 작업에 착수했으나, 막상 처분하려고 하니까 ‘이건 이미 절판되었고’ 라든가, ‘다시 또 읽을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든가, ‘어차피 팔아보았자 제값 받기는 틀렸고’ 하는 식이어서 책의 숫자가 조금도 줄어들지를 않는다.” (p.168)
그래서 하루키와 다르게 딱히 책을 많이 읽어야 하거나 책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것이 아닌데도 우리 집의 슬라이딩 책장은 이미 초과 수용된 책들로 삐걱이고 있다. 마지막 이사를 하던 때, 이후 구매하게 될 책을 고려하여 기존의 책들 중 상당수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책에 책장을 맞추지 못하고, 책장의 수용 정도를 고려하여 책을 버렸다. ㅠ.ㅠ) 다시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유추하건데 이러한 책 과소비는 젊은 시절 부족한 돈 때문에 마음껏 보고 싶은 책을 사지 못했던 한을 이제 와서 풀려고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보는 잡지를 보고 생각한 건데요, 요즘 젊은이들은 돈이 없으면 그다지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 않아요? 비교적 비싼 옷을 입고 자동차라도 없으면 잘 안 풀려나가는 것 같아요... 우리들이 젊었을 때는 돈이 별로 없어도 무료하거나 하지 않았거든요. 창피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돈이 많은 쪽이 이상하다고나 할까요.” (p.197)
책을 읽는동안 이렇게 조금씩 사소한 것들을 향한 하루키의 생각에 동조해 가다보니 어처구니 없는 오독도 생겼다. 그러니까 위의 부분을 읽을 때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맞아, 나와 아내는 돈이 없어도 전혀 무료하지 않았어, 돈이 없다고 창피해 한 적도 없고. 그렇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하루키 말마따나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참 안타깝구만.’
그런데 사실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3년에서 1987년 사이, 자신의 나이가 30대인 시절에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키의 저 말에서 ‘요즘 젊은이’는 그 비슷한 시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였던 바로 나를 지칭한 것인데, 나는 얼떨결에 바로 나를 향하고 있는 하루키의 분석을 바로 지금의 젊은이에게로 토스해 버린 셈이다.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만큼 하루키의 미시적인 일상 분석에 흠뻑 빠진 탓이라고 여기며 가뿐히 넘어가기로 한다. 얼렁뚱땅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반듯하고 심지가 굳었던 하루키와는 정반대로 열심히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지만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으니 계면쩌기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 김진욱 역 / 작지만 확실한 행복 : 무라카미 하루키가 보여주는 작지만 큰 세계 (日出國的工場) / 문학사상사 / 366쪽 / 1997, 2010, 2012 (1983~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