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 《우선멈춤》

얼굴 찡그릴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많으니 읽기 전에 우선 멈춰 생각을...

by 우주에부는바람

안보윤의 소설은 최근에 읽은 것들 중 가장 그로테스크 하였다. 그간 작가가 보여준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자라는 스탠스와는 조금 다르다. 있을 법 하지 않은 이야기와 있을 법한 설정이 유대감 속에서 서로 연대한다. 끈적끈적한 내용이 얽히고 설킨 채 조응한다. 선형적인 구성이지만 선형적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한 번 일어난 사건은 또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앞에 일어난 사건과 항상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기 가슴은 연약하고 말랑말랑했다. 주삿바늘이 뚫고 들어가는 데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순임은 아기 심장에 주삿바늘을 꽂고 다급히 피스톤을 눌렀다. 발작하듯 몸을 떨던 아기가 우뚝 멈췄다. 주먹을 꽉 쥔 채였다... 순간 순임의 귀에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울렸다... 이명(耳鳴)의 시작이었다.” (p.23)


오래전 순임은 아들을 하나 낳았고, 무면허로 낙태를 시술하는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그 시술을 배웠다. 순임은 그렇게 여관에서 손님을 받았고 그 손님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아들을 키웠다. 아니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손님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순임은 막달에 접어든 여자 손님을 받았고, 여자의 뱃속에서 아이를 꺼냈으며, 놀랍게도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살아났고, 순임은 아기를 제 손으로 죽였고, 이명이 시작되었다. 순임의 손님은 거대한 몸피의 여동생을 대동하고 있었다.


순임의 아들 박기영은 엄마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녀가 가져오는 돈만 있으면 되었다. 박기영은 채팅으로 만난 여고생 해정을 섹스 파트너로 삼고 있다. 해정의 아버지는 찜질방에서 어린 아이들을 건드리는 성추행 전력자였으며 해정의 엄마는 젊은 화가와 바람이 났다. 해정의 동생 해수는 아버지의 범죄가 학교에 알려진 이후 왕따가 되었고, 이제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해수의 상담을 위해 멀리 떠나 있는 아버지는 선주라는 여인을 그의 집에 들이민다. 선주는 거대한 몸피를 지닌 여자이다.


선주에게는 몇 명의 남편이 있었지만 모두들 그녀를 떠났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죽은 아이이고, 그녀는 그 아이를 처리하기 위해 화분을 하나 산다. 화분 안의 흙을 버리고, 그 안에 죽은 아이를 채운다. 그녀는 화분이 착한 아이의 집이라고 여긴다. 반면 선주와 상담을 받고 있는 해수는 어느 날 길을 나섰다가 비닐 속 상자에 들어 있는 아이를 발견하여 집으로 데려온다. 해수는 그 아이를 자신의 동생이라고 우기지만 결국 그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것은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선주 뿐이다.


그 사이 해정은 박기영과의 콘돔 없는 섹스를 원하고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을 하였다. 해정이 이를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 또한 선주이고, 해정은 선주로부터 순임을 소개 받는다. 순임은 해정의 아이가 자신의 아들의 아이임을 모르는 채 불법적인 시술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난 순간 이명이 사라짐을 느낀다. 하지만 그 30여년간 지속되던 이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명이 없는 곳에서 또다른 공포를 맛볼 뿐이다. 그리고 순임은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시술에 사용하던 큐렛을 귀에 박은 채 투신 자살하고 만다.


순임은 박기영을 낳았고, 박기영은 해정을 만났으며, 해정은 박기영의 아이를 순임의 시술을 통해 지운다. 순임은 오래전 한 여인의 아이를 죽였으며, 그 아이의 이모일 수도 있는 선주는 죽은 아이를 화분에 키우고, 해정에게 순임을 소개하며, 해수를 상담하는 중이고, 해수는 살아 있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고,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의 문제로 인해 경찰서에 모였을 때,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선언한다.


역시 그로테스크하다. 순임의 손에 들린 큐렛이 망령이 되어 떠도는 호러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성추행과 원조교제와 불법낙태와 유아살해와 시신유기와 폭행과 왕따가 동시에 등장하는 소설이니 잔혹함을 피할 생각일랑 하지 말아야 한다. ‘우선멈춤’이라는 소설의 제목은 어쩌면 독자를 향한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자 우선 멈춰봐... 이 소설이 품고 있는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이래... 그런데도 멈추지 않고 볼 거야? 책의 제목이 묻고 있다.



안보윤 / 우선멈춤 / 민음사 / 210쪽 / 2012 (201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배명훈 《은닉 :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