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진술 속에 한기寒氣가 생기고 뜨거운 수기手記를 낳고 그곳에 자신의 태궁胎宮을 마련한다. 작은 눈금들이 생기는 명칭은 시라고 불러야 하며 육체보다 이름이 먼저 순환되는 주야 晝夜를 우리들의 밀어密語라고 부른다.” (p.26)
나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으나 곧 몽상의 무게에 짓눌려 한동안 당황하였다. 내가 글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글 위를 애벌레마냥 기어다니고 있는 것인지, 이도 아니면 글 위를 떠다니며 천정의 불빛에 희롱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또다른 기시감에 시달렸는데, 바로 지금의 난감한 리듬감으로 어떤 글들을 읽었던 시간을 가진 적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경주가 파스칼 키냐르와 가스통 바슐라르를 인용하는 순간, 지금 김경주의 글을 읽을 때의 어떤 리듬감은 바로 그들을 읽을 때의 리듬감과 (옥타브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나비가 하나의 인체로 들어오다. 시가 된다. 모든 언어는 제 흔적에 내려앉는 나비가 되려 한다. 나비는 시가 되려는 그 언어에만 앉는다. 내 날개뼈 사이에 숨어 있다가도.” (p.93)
시인인 작가는 특유의 아름다운 시어를 통하여 무수한 개념어들을 통과해간다. 그러니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여 쓰디 쓰지만 읽는내내 입술에서는 단내가 진동한다. 오랜만의 경험이었고, 조금은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시인이 다루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몸 구석구석이다. 조용하게 가라 앉을라치면 어느 순간 도약을 종용하고, 그렇게 뛰어 오른 것 같은 순간 종아리에 매달려 추락을 섭정하는 시인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독자들은 시인의 시선을 따라 몸을 살필 수 있게 된다. 뺨으로부터 시작되어 눈물샘으로 끝나고, 여기에 덧붙여 몸이라고도 몸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그림자에 대한 단상으로 마무리되는 산문집의 중간에는 (사진 : 전소연) 몸의 사진 또한 마련되어 있으니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이미 지나온 독서의 길이 품고 있는 리듬감은 이러한 사진들을 통하여 더욱 증폭된다.
“... 그는 비를 보면서 ‘비’의 윗부분을 쓰고자 했다.” (p.272)
무수한 개념어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겠지만, 위와 같은 시인의 문장과 마주치는 순간 지금까지의 길은 모두 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 이러한 점도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길을 잃었다고 하여 무서워할 것도 없고, 내가 지금 제대로 길을 걷고 있는지 의심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바로 그 텍스트 위를 고집할 필요도 없으며, 건너 뛰고 다시 건너 돌아오기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신화가 신들의 화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면 손금은 인간들이 자신의 운명 속으로 신의 속성을 받아들이는 가장 간편한 도약이었다. 잠자리의 겹눈처럼, 인간의 화법 속에 신의 화법을 겹쳐 듣고 보곤 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과 신의 운명이 정확히 만날 때 가장 무서운 신화가 체내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곁눈질처럼.” (pp. 210~211)
아주 오랜만에 몽롱한 채 책을 읽었다. 귀납의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시인의 스산한 상상력이 우리들의 몸에 밀착하는 순간, 치명적이지만 헤어나오기 힘든 언어의 유혹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인이 내민 몸이라는 문고리를 붙잡고 서성이기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몸의 문을 열고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돌아설 것인지는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도 여전히 시달리고 있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몸살이다.
밀어密語 : 몸에 관한 詩적 몽상 / 김경주 / 문학동네 / 384쪽 / 2012 (2012)
ps1. 작가가 다루고 있는 몸의 부분들은 아래와 같다.
뺨, 동상이몽의 별점들. 몽정기, 신체에 관한 시적 몽상. 무릎, 모음의 연골. 눈동자, 홍체의 사각. 눈망울, 몸속의 천문대. 잇몸, 하오체의 고해성사. 손가락, 다른 문으로 가는 현기증. 엄지, 피아노가 선택한 손. 날개뼈, 숨들의 향수병. 목선, 곱추들로 이루어진 유랑극단의 행렬. 핏줄, 몸속으로 숨어버린 삶. 달팽이관. 쇄골, 바로크의 빗장뼈. 입술. 보조개, 사라지는 우물. 목젖, 금방이라는 단어의 체온. 가슴골, 육체 안에 감추어진 다락의 색. 혀, 인류의 보호색. 갈비뼈, 홀수의 습음들. 유두, 몽문톡와 풍속통의 비의. 어깨, 탈구된 누각의 풍경. 종아리, 표본병의 두루미 알. 손금, 신들의 수상술. 인중, 친족의 어둠지. 귓불, 귀를 기다리는 날들의 태내. 고막, 귀띔해줘서 고마워. 젖무덤, 울렁증의 처녀림. 아랫배, 추락의 선해도. 배꼽, 요나, 이주의 상상력. 점, 오해의 동의어들. 머리카락, 인체에 숨어 사는 풍경. 솜털, 환영의 산란기. 항문. 가슴, 은둔자의 흉막제. 불알, 은유의 습속. 관자놀이, 아기의 동화. 속눈썹, 첩모난생증. 콧망울, 청매알의 향. 손목, 필기술의 혹한. 발등, 다리 없는 새의 학의행. 발목, 이미지의 방중술. 발가락, 물고기들의 전지탐지. 복사뼈, 발목에 고인 개울. 등, 몸으로부터 추방당한 세계. 눈물샘. 그림자, 은수자의 풍유법.
ps2. “어떤 책을 보다가 살짝 잠들 때가 있는데 잠결에 읽다 만 책의 뒷부분을 계속 읽어가는 느낌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눈을 감은 채’ 나는 그것을 책 속의 화자話者가 내게 - 은밀하게 - 친밀을 걸어오는 방식으로 여겨본다...” (p.227) 라는 구절을 읽다가 깜짝 놀란다. 내가 밤이면 밤마다 겪는 일인데, 이를 작가 또한 겪는다고 하니 반갑고 애매하다. 나는 이러한 나의 증상 - 그러니까 책을 덮고 이미 어느 정도 잠에 취해 있는데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스토리를 진행시키고 있는 - 을 새로운 형태의 상호교환적 독서라고 여겼는데, 작가는 이를 책 속의 화자가 친밀을 걸어오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