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BS 지식채널 e 《지식 e 7》

생각하지 않음은 역사의 지체가 아니라 역사의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by 우주에부는바람

*2012년 4월 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식e'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일곱 권째까지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는 기본적인 원동력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아젠다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지식채널e의 노력으로부터 발생한다. 책은 ’가난이 태어날 때부터 인생을 규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의로운가. 가난이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라고 스스로 자책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과연 교육적인가.(박경현, 한국교육복지연구소 소장)‘와 같은 질문을 계속해서 던짐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생각하지 않음은 그저 단순함 자체가 아니라 역사적인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행한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짓지 못한 채 선량하게 웃고 있던 아이히만에게서 (아이히만은 나치 홀로코스트의 최종 책임자였다)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낸 한나 아렌트는, 나치는 특별히 사악하고 남다른 악마성을 지닌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낱 필부匹夫·匹婦애 불과 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파시즘의 광기든, 감옥실험의 권력이든, 전기충격기 스위치든 인간에게 악을 행하게 하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하는 방법은 ‘생각하는 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렌트는 말한다... 생각하는 일은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히만으로 하여금 당대의 엄청난 범죄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이 아니라) ‘순전히 생각없음 thoughtlessness’이다.”


이처럼 생각없음의 반대편에 있는 생각있음을 잘만 작동시키면 우리는 (책의 도움을 받아)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다른 아이들이 질문할 기회를 빼앗고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엄청난 짓’이라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두 명의 뛰어난 사고보다 모두의 깊이 있는 사고’임을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책 전체를 일맥상통하는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식채널 e가 가지는 이러한 전체적인 생각있음이 바로 주제가 아닐까. 그러다보니 책 속에는 바로 그 생각있음을 표본으로 보여주는 인사들의 어록들이 그득하다. “신앙에는 신념과 존중, 두 가지가 있다. 신념은 자기 종교에서만 가져야 하지만 존중은 모든 종교에 대해 갖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티벳의 달라이 라마나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을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말하는가.”라고 말하는 브라질의 룰라가 바로 그들이다.


다른 시리즈애서처럼 이번에도 몇 개의 주제에 해당하는 (주로) 인물 그리고 사건이나 상황을 열 개씩 묶어서 책을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직선으로 가다 JUSTICE’, ‘사선으로 가다 ISSUE’, ‘곡선으로 가다 SOLIDARITY’ 라는 세 가지 주제에 각각 열 개의 글들이 묶여 있다. 4월 11일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의 생각있음이 다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니 첫 번째 내용이 바로 그 투표와 관련이 있다. 선택의 기회를 포기하거나 생각없는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우리는 지금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으니 더욱 와닿는 부분들이 많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직선으로 가다 JUSTICE : 가로세로 1.3cm의 칸 안에 찍는 것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투표, 전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냈던 간송 전형필, 언제든지 악으로 돌변할 수 있는 우리를 일깨웠던 심리실험, 타자기에 미친 안과 의사 공병우, 누구나 말하고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만만한 지역 방송국, 놀라울 정도로 순진하였던 화가 앙리 루소,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을 위해 노력했던 박병선 박사, 한 그루 나무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고자 하였던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 은폐된 전쟁의 기억들을 살려내었던 소설가 박완서, 쌀 한톨의 무게를 알았던 생명운동가 무위당 장일순...


사선으로 가다 ISSUE : 가난에 대한 어떤 설문조사, 영리병원 개설의 배경과 그 이후의 두려운 시나리오, 만족을 모르는 식인상어였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과 그를 닮아가고자 하는 한국의 미디어, 독일로 이주하였던 대한민국의 노동자의 인권과 지금 우리 땅의 인권 없는 이주 노동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이름의 인디 예술가의 죽음과 우리 예술인의 현주소, 친고죄로 남아 있는 우리의 성범죄와 전세계적인 슬럿워크 운동, 빚 권하는 우리 대학 등록금의 현주소, 무역규모 1조 달러 달성이라는 빛에 가리워진 어두운 현실, 가장 빨리 죽는 공무원인 우리 소방관의 현재 상황, 공감과 소통이 사라진 시대가 만들어내는 소시오패스...


곡선으로 가다 SOLIDARITY : 훈민정음 점자를 만든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인 송암 박두성, 서로의 성지 순례를 통해 종교 화합의 가능성을 살핀 삼소회, 메소드 연기법의 표본이자 사회 참여를 마다하지 않았던 배우 말론 브랜도, 도식과 규범에 갇힌 근대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교육의 현실, 대동법 시행을 헌신했던 조선의 김육 그리고 땅의 소유권 대신 이용권을 주장하였던 헨리 조지, 물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가상수라는 개념, 동물을 존중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원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브라질을 구해낸 빈민가 출신의 룰라 대통령, 코스타리카의 중립국 상황을 영구적으로 만들며 중미의 평화를 이끈 산체스 대통령...



EBS 지식채널 e / 지식 e 7 / 북하우스 / 387쪽 / 2012 (201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최재천 《통섭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