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하게 될 것이니, 우리가 둘러보아 알고 사랑해야 할 동반자로서의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진 자연과학자로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를 통하여 과학의 대중화, 아니 ‘대중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저자의 산문집이다. 『과학자의 서재』라는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쓰고 남은 나머지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 책을 보지 못했으니, 이번 책의 컨셉에 따라 이야기해보자면 메인 요리는 건너뛴 채 디저트를 먹고 있는 셈이다.
“... 나는 우리 인간이 탁월한 두뇌를 가졌다는 사실은 인정할 용의가 있지만 현명한 동물이라는 평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현명한 동물이라면 우리 스스로 삶의 터전을 이처럼 참혹하게 망가뜨리며 살지는 말았어야 했다.”
『통섭의 식탁』은 일종의 리뷰 모음집이다. 작가가 읽고 감명을 받은 저작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 책을 소개하게 된 배경이나 그 책의 저자와 관련한 자신의 일화를 소개하고, 그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다른 책을 덤으로 소개하는 식이다. 그리고 자연과학자 답게 그러한 리뷰의 많은 부분이 주로 자연과학자들이 쓴 책이거나 과학적 주제를 다룬 에세이시트의 책에 할애되어 있다. 그리고 이 리뷰들은 셰프 추천 메뉴 3, 에피타이저(딱히 자연과학과 관련이 없는 책들이 이 부분에 모아져 있다), 메인 요리, 디저트, 일품요리, 퓨전 요리라는 항목들에 나뉘어져 있지만 그 영역 할당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탄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진화가 우리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은 아니다. 자연선택은 어떤 목표를 향해 합목적적으로 진행되는 미래지향적 과정도 아니며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합리적인 해결 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공학적인 과정도 아니다... 하지만 그처럼 부실해 보이는 과정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단계를 거듭하며 선택의 결과들을 누적시킨 끝에 오늘날 이처럼 정교하고 훌륭한 적응 현상들, 심지어는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일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 가하고 있는 오만한 행위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 인간과 자연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와 그러기 위한 방법,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섭렵해야 할 자연에 대한 이해 방식, 자연 과학과 여타 학문 분야의 통섭이 가지는 장점에 대한 소개, 그리고 저자 자신이 발전시키고자 노력 중인 의생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한 소개 등이 전체 리뷰에 골고루 뒤섞여 있다. 특히 자연을 우리가 알아야 하고 그래서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강조된다.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인간의 속성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도 보다 많이 알면 알수록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큰 거인이라도 우리가 감싸주지 않으면 쓰러지듯이 생물학자인 내 눈에는 우리도 영락없는 자연의 일부이며 잰 체하는 거인일 뿐인데, 왜 요즘 우린 그걸 자꾸 부정하려 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연의 몸통에 작살을 꽂으면 결국 우리도 함께 간다는 걸 왜 모를까?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이 곧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게 그리도 어려운 개념인가?”
여하튼 글을 읽다 보면 자연 과학 특히 생물학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을 보니 작가의 글쓰기가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주 가벼운 리뷰 모음집이지만 이 리뷰를 통해서 제인 구달의 <인간의 위대한 스승들>,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 노경원의 <생각 3.0>, 나탈리 앤지어의 <살아있는 것들의 어려움>, 정부희의 <곤충의 밥상>, 제프리 밀러의 <연애>, 이은희의 <과학 읽어주는 여자>와 같은 책을 읽고 싶어지게 된 것 또한 저자의 공이라면 공이다.
최재천/ 통섭의 식탁 : 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 명진출판 / 359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