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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서른 살을 넘지 않겠다 호언장담 하였던 청춘의...

by 우주에부는바람

“아직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두서 없이, 되는대로, 구석구석 힘을 빼고 쓴 (당시와 하이쿠에 놀라지만 않는다면) 작가의 산문집이다. 사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덥썩 집어 든 책인데, 의외로 오랜만에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느꼈다. (실은 오늘 친구와 메신저로 아날로그 이야기를 한참 떠들은 탓일런지도 모르겠지만...) 특히 위의 구절을 읽으면서는 어찌나 놀랐는지, 바야흐로 작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한 (작가와 한 살 차이다) 독자인 나도 실은 무소불위의 젊은을 구가하던 시기, 서른 살을 넘기지 않겠노라 호언장담을 하지 않았겠는가.


“... 나는 진짜 글쓰는 재능이 풍부했다기보다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상대적으로 짧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고 나니 아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내게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는 점. 취직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고 그렇다고 딱히 소설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일주일에 몇 시간 되지 않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할 일이 없었다. 만약 주변에 마리화나라도 있었으면 그걸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손 닿는 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낡은 286컴퓨터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어라, 어제부터 나 서른 살이었잖아, 이러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 했으니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이라는 가정법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적용되었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이 없으니 할 일도 없어 그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소설이라도 썼지,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고 소설가가 되려면 이런 것을 해봐야 해,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를 들먹이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섭렵하느라 막상 소설을 쓸 시간은 갖지 못하였다.


“자기가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거지에게 동전을 던지다가도 내일이면 그 거지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구걸할지도 모르는 삶이다.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고 밥 딜런이 그 노래(<Like A Rolling Stone>)에서 한 말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저자는 자신이 어느 새 그 자리에 당도하였는지 낯설어 하면서도 소설가 노릇을 하고 있고,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의 글을 키득거리며 소모하는 독자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의 소설가 노릇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나또한 독자로서 책을 읽으며 누리는 호사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였다. 그리고 때때로 조심스럽게 아래의 구절에서 밝힌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무하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는, 비록 그것이 죽는 자리라고 할지라도...


“나는 노예라고 하더라도 평생 한 가지 일만 반복해서 할 수 있다면 죽는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김연수 / 청춘의 문장들 : 작가의 젊은날을 사로잡은 한 문장을 찾아서 / 마음산책 / 243쪽 / 200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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