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든 식구든, 결국 이들은 '약육강식' 의 하층부일뿐...
성석제 특유의 유머 출중 일필휘지 소설이다. 제목도 이에 걸맞게 ‘위풍당당’이다. 오랜만에 발표하는 장편이라고 하는데, 위풍당당하게 내가 돌아왔으니 고만고만한 후배들의 유머 작렬 소설들은 길을 비켜라, 보무도 당당해 보인다. 그렇지만 오래전 작가의 소설 『순정』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웃다가 그만 배가 끊어질 듯하였던 요절복통을 불러 일으키기에는 조금 미진하다고나 할까.
소설은 두 개의 가족 사이의 전쟁을 꼭지점으로 삼아, 그 가족의 기원에 대한 탐구를 밑바탕으로 삼아 진행된다. 하나의 가족은 여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의 어느 산골, 사극 드라마의 촬영장이었다가 이후 지자체 관리하의 유원지가 되었다가 이제는 그저 버려져 흉물스런 세트장일 뿐인 곳에 일군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그곳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거나 흠모하면서 애면글면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피와 휴양과 훈련을 겸하여 이 세트장 근처의 별장에 머무는 조폭 똘마니의 우두머리 정목이 새미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사단이 발생한다. 읍내에서 귀가하던 새미에게 접근하였던 조폭 똘마니를 새미의 말 못하는 동생 준호가 폭행하고 달아남으로써 이 두 가족에게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두 그룹은 “가족이 뭐냐요, 아자씨?” 라고 영필에게 말하는 세트장 그룹의 리더 여산, 그리고 “... 너 식구가 뭔지 아나?” 라고 양구에게 말하는 조폭의 보스 정목을 중심으로 저쟁을 치르게 된다.
이때부터는 일종의 공성전이 시작된다. 개별적인 힘과 폭력에 있어서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조폭 식구들이겠으나 그 싸움이 세트장에서 벌어지는 탓에, 유사 가족인 세트장 그룹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지형지물을 적당히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거들먹거리며 들어온 조폭의 선두 그룹은 똥통에 빠지게 되고, 뒤이어 들어온 똘마니들 또한 말벌에게 쏘이며 도망치기 바쁘다. 하지만 이렇게 힘의 우위에서 밀린 세트장 그룹이 승리를 거두며 독서의 쾌감을 주려는 찰나... 줄거리의 나열은 이쯤에서 그만...
사실 성석제의 전작들을 보았던 사람이라면, 또는 굳이 그렇지 않았더라도 이 불균형한 두 가족들 사이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를 점치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 두 그룹의 싸움이 아니다. 이들의 싸움이 점입가경을 넘어 일대일 맞짱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 위풍당당하게 이 깊은 숲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기계 군단이라 할 중장비의 장대한 행렬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 소설에서 ‘위풍당당’한 것은 저마다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세트장 그룹도 아니고, 전국구 조폭으로 우뚝 설 요량을 하고 있는 정목과 그 부하들도 아니다. 그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패고, 가두고, 물고, 뜯고 하는 약육강식의 하층부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소설 속 몇몇 챕터의 앞 부분에는 자연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지는데, 어찌보면 이들 두 그룹은 그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인간 군상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충분히 성석제스럽고, 이들에 대한 묘사 또한 능수능란하다. 스토리의 전개 또한 막힘이 없고 기승전결의 구조도 (갑작스러운 중장비 행렬의 등장이 다소 난해하기는 하지만) 매끄럽다. 하지만 이 매끄럽기만 한 소설에는 진한 농담 속 페이소스라는 성석제 특유의 소스, 그 소스의 맛이 부족해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 맛이 이전에 만든 그 성석제의 전작이 보여주던 맛과 차별화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맛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감탄하기는 힘든, 그런...
성석제 / 위풍당당 / 문학동네 / 263쪽 / 20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