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멋을 부리고 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데자뷔의 문장들...
책의 마지막 즈음, 2부로 나뉜 소설의 각 부의 intro와 outro에서 화자의 역할을 하는 현자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뒤엉킨 애정이 서로를 엮고, 끝없이 영향을 끼치는 인생을 원한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요약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애정에는 이성애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도, 그리고 동성간의 우정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첫번째 결혼에 실패한 뒤, 무리해서 뛰어든 사업마저 잘 풀리지 않자 그는 상황이 안 좋다며 하소연할 수 있었다. 형편이 안 좋을 때 가족과 헤어졌던,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그의 술친구가 돼줬다. 두 번째 결혼을 앞두었을 때는 약혼녀가 다른 사람 애를 가졌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운명은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소설의 1부는 현자와 강수,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완주로 이루어진 이들 가정에 틈입자가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얼마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열었고, 그러한 불안감이 해소되기 전인데도 이들 부부는 강수의 후배인 태경 그리고 현자의 후배인 미라는 받아들인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에게 집을 맡긴 채 해외로 여행을 떠나버리기까지 한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사건이 벌어지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예측대로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사건이 벌어진다. 나름대로의 과거를 간직한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끌어안고 무인도와 같은 곳에 뚝 떨어지게 되었으니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할 터이다. 물론 태경이 미라에게 기대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 놓는 것과 달리 미라는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다. 접근하지만 들러붙지 않고, 뒤돌아서는 듯하지만 그를 끌어당긴다.
“.... 미라가 세안용 헤어밴드를 두른 채 태경을 배웅하자 태경은 침착한 미소를 지었다... 잘 있어요... 태경의 목소리가 조금 어색하게 다정했고, 미라는 웃을 듯 말 듯한 표저으로 손을 펴들어 허공에 난 건반이라도 두드리듯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보였다. 「잘 가요, 내 사랑」같은 제목을 단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찍는 것처럼.”
어떻게 보면 이들의 사랑 다툼은 철지난 전략을 쓰는 것 같아서 조금 안쓰럽다. 그리고 작가의 문장 구사 또한 한껏 멋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서 더욱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데자뷔의 느낌을 받게 되는데, 잘 떠올려보면 오래전 하루키의 문장이나 바나나의 문장에서 보았음직하다고나 할까. 상실감과 소외의 분위기를 끈적거리는 문장이 아니라 툭툭 끊기며 건너 뛰기 일쑤인 건조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것이 그렇다.
“언닌 항상 날 믿는 것 같은 착각을 줘... 그래서 내가 그런 사람들을 방심하나봐.”
“방심, 그건 내 전문이지.”
“아냐, 언닌 무심해.”
“비난하는구나.”
“아냐, 고마워하는 거야.”
1부와 2부의 나뉨도 어정쩡하다. 1부가 태경과 미라의 방문이라는 컨셉이라면 2부는 이들이 방문에서 정착으로 포지션을 달리한다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 미라의 과거의 남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우영이 좀더 깊게 치고 들어오고, 신욱이라는 또다른 인물이 (그러니까 이 남자가 미라의 옛동거인 혹은 남편인 건지...) 갑작스럽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굳이 1부와 2부로 나눠야 했나, 싶다.
또한 현자의 어머니, 강수의 누이와 어머니, 태경의 딸, 미라의 부모와 남편, 우영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들은 소설을 산만하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과거로부터 비롯된 수직적인 애정의 관계도가 현재의 수평적인 애정의 관계도를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많다. 물론 이것이 인생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인생의 복잡함을 보여주기 위해 소설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기준영 / 와일드 펀치 / 창비 / 263쪽 / 20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