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서 《동주》

윤동주의 묵직한 행적과 시어가 미스터리 하고자 한 형식을 그대로 지나쳐

by 우주에부는바람

윤동주와 그가 남긴 유고遺稿에 얽힌 소설이라는 선전 문구들이 있었지만 실상 소설에서 윤동주와 그가 남긴 유고는 어쩌면 이야기의 변방에 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동주보다는 윤동주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히기 전 머물렀던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던, 시간간이 흘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아이누인 이타츠 푸리 카가 되었던 열 다섯 살 소녀 요코의 이야기라고 보아야 한다.


“동주와 내가 다른 점이 그거였다. 나는 고향을 버렸고, 동주는 잃었다. 버린 사람은 교만하고 버릇없고 사나워졌다. 잃은 사람은 망설이고 머뭇거리고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친절한 편은 아니다. 특히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무려 세 개의 필체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힘겨움이 있다. 게다가 뭔가 윤동주와 관련된 원고를 읽게 되리라는 기대감 또한 금세 사라진다. 윤동주는 그녀 요코의 글 속에 존재할 뿐, 그가 남긴 유고라는 것의 존재는 소설이 한참 진행을 하는 동안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소설은 서둘지 않고 느리게 진행되는데, 그 대부분은 조선인으로 간도에 살다가 일본으로 넘어온 동주, 아이누인으로 에비라에서 천덕꾸러기로 살다가 교토로 넘어온 요코의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 어떤 지점을 지목하는데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 동주와 나는, 잃었든 버렸든 고향을 떠나왔고, 교토의 한 아파트에 살았으며, 무엇보다 가모오하시 교진을 친구며 스승으로 여겼다. 동주는 앞서고 나는 뒤지긴 했으나, 동일선 위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한 내 기억은 동주에게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소설은 요코의 기록에 접근해가는 재일교포 3세 겐타로의 부분에서 흡입력을 가지고 진행된다. 그가 친구인 시게하루의 제안을 받아들여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러는 사이 시게하루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도서관 내부의 어떤 인물과 쪽지를 주고 받고, 그 쪽지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은 추리 소설의 얼개를 띠면서 긴박감을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긴박감은 중간중간 치고 들어오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힘을 받지 못한 채 그만 흩어지고 마는 모양새이다. 물론 윤동주의 친구 한명준, 그 한명준이 항일운동 과정에서 내부의 분열 책동에 의해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 민족저항시인으로서의 윤동주라는 외피를 털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대륙낭인이라 불리운 미우라 마사오의 정체가 시게하루의 실종이라는 현재의 사건을 해결해주는 열쇠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사건 중심이 아니라 설명 중심이라는 문제를 지닌다.


“동주의 심장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박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의 언어가 멈춘 것은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서였다. 그의 심장박동이 멈출 때 숨도 따라 끊어진 거였으나 시인으로서 품었던 그의 정서가 끊어졌던 것은 언어가 멈췄을 때였다...


결국 남는 것은 언어의 문제이다. 윤동주와 어린 시절을 공유한 요코가 몇 명 남지 않은 아이누어를 구사하는 아이누인으로 거듭난다거나 윤동주의 유고 원고를 찾던 겐타로가 자신의 언어적 정체성을 찾아 한국어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작가는 모국어 혹은 모족어가 가지는 끈끈한 힘을 말한다. 그렇게 소설 속에서 언어와 언어 공동체로서의 민족(혹은 종족)이라는 이 두 개념은 윤동주를 통하여 그리고 요코와 겐타로, 아니 이타츠 푸리 카와 김경식을 통하여 운명 공동체로 합치된다.


그러니 어딘지 께름칙하다. 작가는 민족저항시인으로 추앙받는 윤동주의 어깨에서 무게를 덜어주고자 이 소설을 구상하고 썼다고 말하지만, 이 소설을 통하여 그것이 가능해졌다고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소설을 통하여 윤동주의 언어는 민족을 대표하는 무엇보다 중요한 특질이 되고 말았으니, 그리하여 윤동주를 발판으로 삼아 요코와 겐타로가 자신의 정체성에 접근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윤동주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소 무거운 주제가 미스터리한 형식에 얹혀졌으나 대략 절반 정도의 성공에 그치고 말았다.



구효서 / 동주 / 자음과모음 / 427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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