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내 연애의 모든 것》

사랑 가득한 가슴이 저들의 철옹성을 뚫고 들어가 냄새의 근원을 찾을 수

by 우주에부는바람

“... 외모 지상주의... 세상은 변했다. 사회주의의 씨가 말라 버린 이 신자유주의 밀레니엄에는 어떠한 아름다운 내용이든지 일단 아름다운 외부를 담보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이 일단 거론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여자 주인공 오소영은 진보노동당의 당대표이자 (대략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의원을 떠올리면 되겠지만, 뭐 이런 식의 매칭을 하지 말라고 작가가 권고하고 있으니...) 의문의 죽음을 맞은 야권대권주자 오문영의 동생이며, 언니가 남긴 피붙이 천재 소녀 보리의 실질적인 보호자이다. 나이가 좀 있으나 결혼을 하기 전이고, 미모 또한 겸비하고 있으니 주의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 상대자로 등장하는 인물은 현진 대학교수의 둘째 아들이자 검도 유단자로서 마초의 기질이 다분하고, 유능한 판사에서 어찌어찌 잘못하여 집권 여당의 전도유망한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하게 된 김수영이다.


“... 적은 위대하다. 우리가 패도에 빠져 망해 가는지도 모를 때 혹은 모른 척 하며 망해갈 때 똥과 된장을 분명히 구분해 주는 정직한 비평가는 진정한 적밖에 없다.”


이처럼 철천지원수와도 같던 이들이 무슨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어느 날 짠, 사랑에 골인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 (작가가 바보가 아닌 한에야 그런 뻔한 전개를 무리하게 강행하지는 않지...), 것은 아니고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리면서 자신들의 인간적인 혹은 정치적인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고, 또 결국 그것을 수습해 간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 어쩌면 사막은 내가 사막으로 가고 오는 것도, 사막이 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위태로운 내가 스스로 사막이 돼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소설에는 (천재 소녀 보리가 내내 읽고 있는) <삼국지>를 비롯하여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카뮈의 <이방인>을 비롯하여 여러 작가들과 그들의 책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각종 사랑과 인생의 잠언들이 넘쳐 난다. 그리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작가 자신이 던지는 잠언들 또한 군데군데 포진하고 있는데, 나는 괜스레 위의 문장에 꽂혀서 한동안 곱씹었다. 하지만 이러한 잠언들을 모두 물리치고 이 책에서 유일하게 나를 감동시킨 것은 비열하기 그지없는 새한국당 국회의원 문봉식의 보좌관이 그의 비밀을 폭로하면서 내뱉는 몇 마디의 말이었다.


“내가 그 작자 옆에 있으면서 깨달은 게 뭔지 아십니까? ... 그놈들은 도대체가 좌절이라는 게 없어요. 뭐, 어쩌다 감옥에 처넣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언제고 또 튀어나와 활개를 치고 다닐 겁니다. 우리에게는 없는 기가 막힌 것을 가지고 있거든요... 어쨌든 버티면 다 지나간다는 것. 무조건 뻔뻔하게 굴면 이긴다는 것. 그런 게 목숨에 배어 있어요... 난 보복당할 겁니다. 틀림없이...”


우리들의 현실 세계에서는 쉽사리 벌어지기 힘든 일이어서 더욱 감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현실은, 선거는 끝났다는 것이고 결국 저들 기득권 세력은 또 이겼다는 사실로 모든 것이 일단락되는 분위기이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여러 사건들은 또 그렇게 냄새만 피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소설 속의 저 보좌관처럼 누군가가 보복을 감수하고 실토하지 않는 한, 저들의 철옹성을 뚫고 들어가 그 냄새의 근원을 밝히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소설이 정치권을 소재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주제를 정치라고 볼 수는 없다. 소설의 주제는 이들 ‘국회의원’이 아니라 이들 국회의원이 나누는 ‘사랑’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에는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작가는 굳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끌어들인다. 한눈에 반해 버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 무슨 개연성이 있었나,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데, 로미오와 줄리엣은 십대였지 않나. 그들에게 가능하였던 사랑이라고 해서 사십대의 국회의원들에게도 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여하튼 재미있는 소재와 배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많이 부족하고, 그 부족함을 이야기 바깥의 영역에서 (그러니까 수없이 많은 인용들) 상쇄시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한 것으로 보여진다. 어쩌면 인터넷 연재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응준 / 내 연애의모든 것 / 민음사 / 337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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