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과 《테러의 시》

파묻히고 흩뿌려지고 서걱거리는 제니와 리의 모래와도 같은 유랑에 대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제니는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울지 않는다. 울 것이 없다.”


모래에 파묻힌 도시에서 아버지에 의해 돼지와 함께 길러졌던 나는 팔린다. 트럭에 실려 가방에 실려 트렁크에 실려 옮겨 다니는 동안 여러 남자와 섹스를 한다, 나는 제니다. 그리고 이제 클럽에 도착한다. 클럽에서 핑크, 스노우, 캔디, 베이비와 함께 진저라는 이름으로 몸을 판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유독 제니를 찾는다. 그는 결국 제니를 자신의 가정부로 고용한다. 그 남자에게는 두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있으며 그는 이혼을 한 상태이고 음식을 해주고 아이를 돌봐주고 결정적으로 섹스를 해줄 여자가 필요했다.


“... 창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안 좋은 색을 띤다. 바닥에 깔린 회색 카펫에서는 안 좋은 냄새가 난다. 침대 곁의 등은 안 좋은 빛을 낸다. 냉장고에 근 물은 안 좋은 맛이 난다. 욕실에 있는 샴푸에서는 안 좋은 향이 난다... 모든 게 안 좋다.”


어느 날 제니는 쇼핑몰에서 그 남자의 아들의 원어민 가정 교사라고 할 수 있는 리와 만난다. 그리고 제니는 모든 것이 안 좋던 어느 날 그 남자를 떠나 리에게로 간다. 이제 제니는 마리화나 중독자인 리가 살고 있는 페스카마 15호라고 불리우는 빈민가에서 산다. 리는 환각에 시달릴 정도의 중독자이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오래 가지 못한다. 빈민가는 헐리고 리와 제니는 떠돈다. 목사와 손을 잡고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팔러 다닌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흘러든 리와 중국에서 한국으로 흘러든 제니의 과거를 들으며 신도들은 울고, 주머니를 연다. 리와 제니를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제니는 클럽의 남자들에게 다시 붙잡히고 만다. 아니 제니는 그들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고 보아야겠다.


“결국 제니에게 남자들이란 제니의 다리를 벌리고, 손바닥에 가루나 알약을 얹어 주고, 물과 함께 삼키게 하고, 그래서 제니의 머리가 햇살에 녹은 버터처럼 물렁물렁해지면, 그런 제니의 가슴에 손을 얹은 채 흐느끼는 것들이다... 남자들, 그건 천천히 돌아가는 미러볼, 커다란 창을 가진 호텔방,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흰 가루의 다른 이름이다.”


뿌리가 없이 떠도는 유랑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제니와 리의 모래처럼 겉도는 삶, 그렇게 모래를 한 가득 품은 듯 서걱거리는 삶을 보여주지만 이야기의 전개방식이 친절하지는 않다. 그리 두껍지 않은 소설이며 ‘테러의 시’라는 제목에서 암시되듯 각양각색의 은유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납득해야 하는 스토리가 없어서 난감할 수 있지만 오히려 내레이션에 구애받지 않으니 힘들이지 않고 읽을 수도 있다. 얽매이지 않는 문장의 유연함이 마치 환각 상태의 자유 기술처럼 박력이 넘치니 나쁘지 않다.



김사과 / 테러의 시 / 민음사 / 219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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