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빌라 아말리아》

하나의 악장이 끝나고 다음 악장이 시작되는, 그 어떤 공간...

by 우주에부는바람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을 읽다보면 곧잘 음악이 떠오른다. 작가 자신이 첼로 연주자이기도 하며,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넓은 것으로 유명하니, 자연스럽게 소설 속으로 스며든 것이리라. 게다가 소설 속 주인공인 안 이덴의 직업 또한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이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클래식 음악을 듣는 행위에 깃든 뉘앙스는 떠올릴 수 있는데, 소설에서는 그러한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Eleni Karaindrou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음악을 들으면서 소설을 읽었고,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서 리뷰를 작성하는 중이다.)

“만일 운명이란 것이, 자신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장소에서 생겨난 충동이라면, 그래서 한 존재를 사로잡고, 그 존재가 충동의 본성을 한순간도 깨닫지 못하면서 그것을 따르게 되는 것이라면, 그녀에겐 운명이 있었다. 자신의 운명을 자각한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연히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떤 것이 내게 결여된 그곳에서 내가 헤매고 싶어지리라는 느낌이 든다.”

소설의 주인공인 마흔 일곱의 여인 안은 어느 날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신의 지금 이곳으로부터 떠날 결심을 한다. 그 결심의 한 축에 남편의 외도라는 상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온전히 그것만을 떠남의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그녀는 어쩌면 하나의 악장을 마치고 또 다른 악장을 시작해야 하는 때라는 운명의 소리를 들은 것일 런지도 모른다.

“그녀는 지아 아말리아의 집을, 테라스를 만(灣)을, 바다를 열정적으로, 강박적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모든 사랑에는 매혹하는 무엇이 있다. 우리의 출생 한참 후에야 습득된 언어로 지시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무엇이 있다. 한데 그토록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은 이제 남자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오라고 부르는 집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유럽을 여행하는 중 이탈리아의 한 섬에서 지아 아말리아의 집, 소설의 제목이 되기도 한 빌라 아말리아를 만나게 된다. 지아 아말리아를 설득하여 집을 임대하고, 그 집을 고치고, 그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그곳을 토대로 하여 사람들과 친굘르 맺는다. 간혹 프랑스 파리로 혹은 고향 브리고뉴를 방문하지만 그녀는 결국 빌라 아말리아로 돌아온다.

“자신의 잠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은 아마도 유일한 외설이리라... 자고 있는 중인, 허기져 하는 중인, 꿈꾸는 중인, 팽팽해지는 중인, 도주하는 중인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기이한 봉헌이다... 불가사의한 봉헌... 그녀는 눈꺼풀 밑에서 가볍게 떨리는, 여리고 창백한 살갗 밑에서 움직이는 두 눈을 보았다. 전부 다 보았다. 그가 꿈꾸는 것도 보았다. 그는 누구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일까? 기이하게도 그녀는 그가 그녀의 꿈이 아닌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꿈을 꾸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레온하르트 라드니츠키와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감정으로 서성이고, 그의 딸인 레나 마그달레나와 우정과 모정 사이의 감정으로 교감한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 만난 쥘리에트가 포함된 충족 가능한 욕망으로 느긋하던 참에 찾아온 갑작스러운 죽음의 방문은 모든 것을 또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안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던 조르주의 시골 집 한 켠으로 숨어든다.

공간과 죽음이 서로를 넘나들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절절한 소설을 너무 서둘러 읽은 것 같다. 이런 소설은 좀더 공을 들여 천천히 읽었어야 한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음악도 그 노력의 일환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몸이 아프니 마음 또한 급해진 탓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인생의 어느 순간, 꼭 다시 한 번 펼쳐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추가시켰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파스칼 키냐르 / 송의경 역 / 빌라 아말리아 (Villa Amalia) / 문학과지성사 / 368쪽 / 2012 (2006)


ps. 소설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의 대부분 3인칭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3부에서 갑작스럽게 샤를이라는 인물이 1인칭으로 등장한다. 혹시 내가 1인칭 소설을 3인칭 소설인 줄로 착각한 채 읽고 있었나? 놀라서, 책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는데 아주 극소수의 부분에만 샤를이 1인칭으로 등장할 뿐이다. 혹시 이 책을 읽으실 분이라면 크게 의아해하지 않아도 좋겠다.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 대략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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