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나아나아' 정신의 산사람들이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활력...
“그들은 흔히 입버릇처럼 ‘나아나아’라는 말을 사용한다. 누군가를 부르는 말투도, 어떤 상황을 적당히 끝내려는 느낌도 아니다. ‘천천히 하자’, ‘마음을 가라앉혀’ 정도의 뉘앙스다. 조금 더 발전해서 ‘마음이 한가롭고 평안하다’ 혹은 ‘날씨 좋네’라는 뜻으로도 ‘나아나아’ 한마디면 해결된다.” (p.8)
대충 엮어 보자면 전라도 사투리 ‘거시기’처럼 그 활용례가 무궁무진한 것이 바로 소설 속 ‘나아나아’라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무사리 숲에 위치한 가무사리 마을에 임업 연수생으로 들어가게 된 도시 출신 유키에게는 이러한 말투부터가 받아들이기 난감하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형태의 대화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우리로 치자면 ‘거시기’가 잔뜩 들어간 전라북도 어느 농촌 마을의 촌로들 대화를 아무 연고가 없는 서울내기가 듣고 있는 형국이라고 상상하면 되겠다.)
“나아나아.” (볕이 좋네요.)
“진짜 나아.” (정말 그러네요.)
“댁의 사람은 벌써 산에 올릇나?” (댁의 남편은 벌써 산에 일하러 나갔나요?)
“오늘은 근처라서 낮부터 나아나아한다고 아직나. 청소기를 못 돌리니까 답답하자나.” (오늘은 가까운 산이라서 점심 먹고 천천히 나간다고 하네요. 아직 집에 있어서 청소기를 돌리기도 그러네요.) (pp.8~9)
게다가 유키의 사수라고 할 수 있는 요키는 첫 만남에서 요키의 휴대폰 밧데리를 분리해서 버리는 것으로 인사를 하는 실정이니, 유키는 일단 살고보자는 생각에서 가무시라 마을을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궁리부터 시작하였다. 하지만 휴대폰도 안 터지고, 기차도 드문드문 다닐 뿐이며, 그 기차를 타는 곳까지 나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곳에서의 탈출이 만만치 않음에 자포자기 한 유키는 서서히 그곳의 생활에 적응해 가기 시작한다.
“... 기온이 오르면 공기에 여러 가지 냄새가 섞이기 시작한다. 작은 강을 흐르는 맑은 물의 달콤함, 이제야 안간힘을 쓰며 흙을 뚫고 나오려는 연한 풀의 청초함. 어디선가 마른 가지를 태우는 고소함. 겨울 동안 깊은 산속 어디선가 죽은 동물의 썩은 냄새. 삼라만상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p.50)
일은 고되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손에 익기 시작하고, 요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차 끈끈해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나카무라 사장의 처제인 젊은 나오키의 등장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유키의 남성성을 부추기기까지 하니 산사람들 사이에 섞여 하나의 남성으로 성장하는 데에 한 몫을 보탠다. 그렇게 유키는 가무사리 숲에서 일 년여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1년이 지나서야 조금 깨달았다... 산은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나무는 삽시간에 성장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사소한 변화일지 몰라도 바로 그런 것을 놓치면 절대 좋은 나무로 자라지 않을뿐더러 산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할 수 없다.” (p.319)
사실 가무사리 숲을 생활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나아나아’ 정신은 숲의 정신이기도 하다. 도시의 빠르기만 하였지 맥 풀린 생활에 비하여, 이곳 숲의 느리지만 꽉 조여진 생활은 훨씬 풍성해 보인다. (<검은 빛>을 제외한다면)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이야기를 쓰는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이번 소설도 하나의 주인공이 아니라 일단의 주연 군단을 중심으로 한 착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나아가지만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 일쑤인 현대인에게 이 숲의 ‘나아나아’ 정신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벌써 ‘나아나아’한 휴일이 끝나가고 있구나...
미우라 시온 / 오세웅 역 /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神去なあなあ日常) / RHK (랜덤하우스코리아) / 327쪽 / 2012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