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극악한 심연 속에서도 한 줄기 가녀린 인간성의 빛이 뚫고 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6~17세기, 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제국의 궁전에서 어느 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그러니까 제국의 황제, 신에 가까운 왕이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세 개 대륙에 걸친 영토를 다스리는 술탄이 어느 날 궁전의 하렘(왕궁 내 후궁들이 거처하는 장소)에 감금되었다. 그들은 술탄과 하렘의 여자 귤베덴을 한 방에 넣은 다음 음식을 넣을 수 있는 조그만 틈을 제외하고는 아예 벽돌과 회벽으로 발라버림으로써 산채로 방에 묻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술탄의 감금 장면을 곁에서 훔쳐 본 아비시니아(지금의 이디오피아) 출신 늙은 환관장(하렘의 관리자)인 슐레이만은 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 ‘눈빛만으로 모든 생명체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살모사조차 눈이 부시게’ 만들 정도의 권력을 가진 술탄이 (그래서 이 책의 원제는 ‘살모사의 눈에 비친 현란함’이다) 경비병에 의해 잡혀 오고, 그대로 방에 묻히다시피 감금될 수 있다는 사실을 슐레이만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술탄의 감금으로 시작하여, 환관장인 슐레이만이 그 사건의 전모를 알아가는 과정과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전 과정은 조연급의 등장인물이면서 사건의 나레이터이기도 한 슐레이만의 눈을 통하여 밝혀진다. 책의 말미에 붙은 인터뷰를 보면 작가는 ‘오스만 제국 당시의 역사가들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 소설에 열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소설 속의 슐레이만이 바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 술탄이 기분 좋지 않은 순간 그의 눈앞에 얼씬거릴 때, 원정 나갔던 군대에서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져왔을 때, 필요없는 말을 묻거나 그가 물어보라고 했는데 말없이 있을 때, 너무 멍청하거나 너무 영리해 보일 때, 그의 안전에서 하품할 때, 술탄의 눈을 불편하게 만드는 얼굴이나 코를 가졌을 때, 사람들은 변명 한마디 할 기회도 없이 바로 문 앞에 서 있는 경비병들의 칼에 목이 날아갔다...”
질펀한 섹스의 향연장쯤으로 우리가 여기고 있는 하렘을 주요 무대로 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에로틱한 장면들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은 그보다는 그로테스크하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오스만 제국의 실상은 작가가 ‘이 정도로 끔찍하고 휘황찬란한 역사’는 드물 것이라고 지적하였듯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특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술탄의 행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위엄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러니 슐레이만이 그러한 술탄이 경비병에 잡혀서 갇히는 장면을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였던 오스만 제국의 그로테스크함은 술탄 한 명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하늘 아래 술탄은 하나여야 하기 때문에 형제 중 한 명이 왕에 오르면 나머지 형제들은 모두 죽임을 당해야 한다거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동생이 형의 죽음으로 갑작스레 왕이 되고, 혹시라도 자신에게 해가 될까 후사를 남기지 못하도록 자식을 동성애자로 만들었던 어미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술탄이 되어 버린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을 없앨 계획을 세우는 암투가 벌어지는 곳이 바로 오스만 제국의 왕궁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친아들을 변태성욕자로 만든 여인, 또 다른 아들을 감금하고 끔찍한 종말을 준비한 여인, 손자를 죽이려다 제 덫에 걸려 근위병들의 손에서 발버둥치다 죽은 베네치아 여인.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이스탄불에서 대대로 전해졌다.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목조건물에 사는 빈민들은 항상 되뇌었다... 수의(囚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저 세상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암투의 중심에 있었던 황태후 또한 자신의 권력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었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광인 술탄이라고 불리우는 이브라힘을 모델로 하여 인간의 내면에 있는 극악한 어둠의 심연을 이야기 내내 보여주는 소설은 (물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사건들은 조금씩 순서가 바뀌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이브라힘의 마지막 선택에서 일말의 희망을 남긴다. 그리고 그 가느다란 빛과 같은, 술탄 이브라힘이 마지막으로 보여준 인간성의 발현이 바로 작가가 말하고자 한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쥴퓨 리반엘리 / 이난아 역 / 살모사의 눈부심 (Engereǧin Gȍzȕnƌeki Kamașma) / 문학세상 / 229쪽 / 2002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