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끈한 프롤로그에 비하여 갈팡질팡 흩날리는 이야기들...
처음 14세기 아랍권의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가 기록하고 있다는 밧줄 마술 이야기가 나올 때만해도 흥미진진하다. 어린 조수가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그러나 이후 내려오지 않고, 마술사가 그 뒤를 따라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그리고 어린 조수의 절단된 사지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마술사가 내려와서 이 절단된 사지를 양동이에 주워 담고, 곧이어 양동이를 덮었던 거적을 벗겨내면 말짱한 어린 조수가 나타난다는 이야기...
이와 함께 중국에서 전해져 온다는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을 들을라치면 소름까지 살짝 돋는다. 이야기인즉슨, 이 밧줄 마술을 지켜본 중국 황제는 사지 절단으로 죽은 어린 조수를 살려내는 마술사의 행위에 흠뻑 빠져서는, 마술사가 살려내주길 기대하며 자신의 신하를 사지절단해 버린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던 마술사는 밧줄을 타고 하늘로 도망가 버리는데, 작가는 그렇다면 우두커니 남겨진 마술사의 조수, 그 어린 소년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한다. 이 하나인 듯도 하고 둘인 듯도 한 이야기를 프롤로그로 삼아 소설은 시작된다.
프롤로그에 이은 첫 번째 장에서 드디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이, 그리고 일종의 나레이터격이라고 할 수 있는 ‘나’가 등장한다.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 어린 소녀를 어미로 삼아 태어난 제이는 돼지 엄마라 불리우는 여자의 손에 들어가고, 나의 부모 소유로 되어 있는 다세대 주택에 살게 되면서 나와 제이는 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돼지 엄마가 일하는 룸살롱을 놀이터 삼아 성장한다. 하지만 내가 이사를 가고, 돼지 엄마가 마약쟁이와 함께 사라지면서, 제이는 이제 페허가 된 재개발지역의 주택에서 악마를 불러내는 의식을 치르며 버티다가 나의 실수로 그만 보육 시설로 잡혀가게 된다.
사실 흥미로운 것은 이 첫 번째 장 정도까지에서 그치고 만다. 소설은 이후 그저 어중간한 성장소설이자 청소년소설 혹은 비행청소년 르뽀소설로 치닫는다. 보육 시설 근처에 있던 개 사육 시설에서 마주치게 되는 개 그리고 다방 여자, 한나가 묶여 있던 의자와 담배빵과 윤간을 당하던 지연에 이어서 목란과 이후 다시 등장하는 ‘나’인 동규까지 여러 인물과 상징물들이 등장하지만 오히려 번잡스럽다.
마술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소설이 갑자기 사회고발의 르뽀에 가까운 리얼리즘 소설이 되었다가 폭삭 늙어버린 제이를 등장시키는 구도 소설이 되었다가 폭주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는 마술 이야기로 맺어지니 시작과 끝에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4장에서 등장하는 박승태 경위, 그리고 에필로그 격인 부분에서 등장하게 되는 작가의 오래전 친구라는 Y 또한 오히려 소설의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주인공인 제이와 나레이터인 ‘나’ 동규, 그리고 작가 자신이라는 삼위가 이토록 일체하지 못하고 있으니 독자는 소설이 끝나는 순간까지 허둥댈 수밖에 없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천상에서 다시 지상으로 혹은 순수의 세계에서 야만의 세계로, 야만의 세계에서 다시 구도의 세계로 혹은 빛을 바라보고 있는 이야기의 세계에서 빛을 등지고 있는 현실의 세계로 이어지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흐름은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소설 속에 “예술가는 작업하지 않는 고통이 작업의 고통을 넘어서지 않는 한 일하지 않는다.”라는 미국 조각가 스테판 디스태블러의 말이 등장한다. 어쩌면 작가는 ‘작업하지 않는 고통’이 일하지 않아서 생긴 ‘고통’을 넘어서기 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주변의 부추김을 받고 소스를 넘겨 받아 작성된 일종의 수기이다보니 무르익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늘에서 사지가 절단된 채 떨어진 어린 조수, 마술사는 그 어린 조수의 근육까지도 다시 살려냈지만 작가는 그 마술사의 경지에 다가서지 못하였다. 오히려 작가는 중국의 황제처럼 엉뚱하게 난도질 하였고, 독자로 하여금 우두커니 남겨진 어린 조수의 마음을 체험하게 만드는 쪽에 가깝다.
김영하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문학동네 / 280쪽 / 20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