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현란하기 그지 없는 청산유수 작가가 모터라도 달린 듯 뿜어내는 순정

by 우주에부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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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는 다들 뭔가에 매혹된 시대였다. 온 국민은 독재자와 슬레이트 지붕에 매혹되었고 독재자는 수출과 여자에게 매혹되었으며 우리는 팝송과 이소룡에 매혹되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이중에서도 바로 그 이소룡에 매혹된 한 남자의 일대기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두 가지 소설이 자꾸 떠올랐는데,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성석제의 『순정』이었다. 그러니까 소설은 성석제 이후 가장 막강한 말빨로 무장하고 있는 작가인 천명관이 쓴 ‘이소룡 키드의 생애’ 이자 ‘또 다른 순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소룡의 영화를 따라 성장하는 동안 주인공 권도운은 이소룡 키드가 되는 것이고, 동네를 평정하는 무도인이자 일생을 바쳐 한 여자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오롯하게 순정남이 되는 것이다.


나의 삼촌 권도운은 여덟 살의 나이에 권씨 집성촌인 학촌 마을에 불쑥 나타났다. 그가 등장하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바깥에서 살림을 차려놓고 두집 살림을 하고 있었음을 알았지만, 바로 그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시고 난 다음이었다. 그렇게 도운은 다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나의 삼촌이 되었고, 뒷산에 홀로 연습장을 만들어 무도인이 되었으며, 스스로 거대한 이소룡의 그림자 아래에서 무도인의 길을 걸었다.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이소룡의 위와 같은 말을 몸소 실천한 삶의 주인공이 바로 삼촌이었다. 그러니 이소룡이 곧 삼촌이고 삼촌이 곧 이소룡이었다고 해야 할까. 작은 마을에서 천덕꾸러기의 삶에 그칠 수 있었던 내력에도 불구하고 삼촌은 마을의 주먹들을 영문도 모른 체 제압하였고, 어느 날 평생의 운명이 되는 여배우 원정을 만나게 되었으며 서울로 올라와서는 사기꾼에게 영춘권을 배웠고, 죽은 이소룡을 대신할 오디션에 참석하러 홍콩으로 향했는가 하면, 재수없게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한 기자를 살려냈고, 자신을 품어준 사람들을 사랑하였고, 으악새 배우라 불리우는 대역 배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였으며, 자신이 사랑한 여자를 위하여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히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악하지 못하면 짓밟히고 또 짓밟히는 삶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대사를, 그 태생부터가 영악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철저히 순박한 삶의 태도로 통과하였던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인간적 풍모에 반하지 않기 힘들다. 그가 근처에 있다면 어린 상구와 종태가 그러하였듯 넙죽 절을 올리고 사부님으로 삼고 싶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최소한 넌 뭔가 말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누군가 그걸 들어줄 사람도 있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럴 기회도 없어. 다들 그냥 사는 거야. 말도 못하고. 되새길 것도 없고 지킬 것도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이. 그러니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하란 얘기야. 뻔뻔스럽고 영악하게.”


세상 돌아가는 모양에 문외한이니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알지 못하니 반박할 사이도 없이, 그렇게 세상 돌아가는 바에 따라 정처없이 돌아다녀야 했던 삼촌의 매력은 작가 천명관의 청산유수와 같은 말의 힘을 빌어 더욱 도드라진다. 스스로 그저 살아갈 뿐이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저 살아갈 뿐이었던 삼촌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의 무게는 작가의 손 끝을 따라서 휘청휘청 하지만 (작가가 짐작하듯)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우리와 같은 독자는 그 휘청거림의 어지러움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두툼한 두 권짜리 소설에는 삼촌의 여정을 따라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의 병폐, 연예산업과 권력의 유착, 삼청교육대를 비롯한 독재 권력의 산물 등이 다뤄진다. 동시에 소설은 삼촌의 첫 번째 제자인 종태, 삼촌의 첫 번째 여자였던 오순이를 비롯하여 동네 건달인 도치와 토끼, 그를 거둬줬던 마사장과 칼판장, 나의 첫사랑인 올리브 선생과 대학 시절의 경희, 그리고 30년만에 삼촌의 품에 안기게 되는 여인 최원정에 이르는 캐릭터 만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오토바이 엔진이라도 장착한 듯 쉴 새 없이 현란한 문장에 적절히 싣고 달리니, 블로그 연재라는 쉽지 않은 글쓰기 형태에도 불구하고 보기 드문 수확물을 만들어 냈다.



천명관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 예담 / 전2권 (1권 412쪽, 2권 373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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