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난의 역사를 '판결문'으로 품고, 그것이 새겨진 현재의 우리의 삶
리영희 선생의 『대화』를 읽은 후 선택한 책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읽은 이후 그 이전 시기에 대하여 한번쯤 정리된 책을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그렇게 단군 이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한국통사라고 할 수 있으니 적당해 보였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선생이 30대 초반이던 1932년과 1933년에 걸쳐 <성서조선>이라는 잡지에 연재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글을 기초로 쓰여졌다. 하지만 이후 1961년 세 번째 판을 내며, ‘교파주의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없애버리면서 책의 제목 또한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수정하였다.
“... 하나님은 못 믿겠다면 아니 믿어도 좋지만 ‘뜻’도 아니 믿을 수는 없지 않느냐. 긍정해도 뜻은 살아 있고 부정해도 뜻은 살아 있다. 져서도 뜻만 있으면 되고, 이겨서도 뜻이 없으면 아니 된다...”
그렇게 책은 기독교도인 선생의 철학에 따라서 중간중간 성서의 내용이 인용되며 어찌보면 운명론적이고 결정론적인 태도로 작성된 한국역사이지만, 동시에 민중운동가였던 선생의 태도에 따라서 민중지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철학으로 작성된 한국역사라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는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에 대항하였고,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이승만에 항거하였으며, 이후 독재 정권과 투쟁하는 삶을 살았던 선생의 노선은 우리의 역사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우리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 있어서도 냉정하다.
“... 한국 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잡다 사이에 하나인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는 암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생각하는, brooding over 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 시 없는 민족이요, 철학 없는 국민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단군 시대 이후 우리 민족의 역사를 관통하는 심지 굳은 종교를 (단순한 종교라기 보다는 이로부터 비롯되는 일관된 철학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갖지 못함으로 우리가 걸어온 고난의 시대를 설명하는 선생은 그 최초의 고난의 시작점으로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지적한다. 그리고 아마도 이 지점은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를 중시하는 바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다.
“... 신라가 통일을 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본래 마땅히 될 것대로 된 것이 아니므로, 다시 말하면 통일을 참으로 이룬 것이 아니므로, 한국 역사는 고구려의 패망을 계기로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 비극의 시작이다. 고구려가 그 거인의 시체를 만주 벌판에 드러내놓음으로써 한국 민족은 고난의 연옥길을 걷게 된다...”
웅혼한 민족혼을 드러내기에 거침이 없었을 만주 벌판을 기반으로 하였던 고구려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었다면, 이라는 역사적 아쉬움이 곧 고난의 시작이 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치는 동안에도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대륙으로부터 그리고 섬으로부터의 침공에 속수무책이었던 고난의 과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은 일면 이해할 수 있다.
“민족 안에서는 나와 나의 다름이 없다. 시대의 차이도 없다. 왕조의 구별도 없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잘못한 값을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다. 책에 써야만 역사가 아니라, 나의 생이 곧 과거의 기록이요, 내가 난 시대가 곧 전 시대에 대한 판결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부인하고, 어떤 패배주의로 흘러가는 역사 기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과 현재의 나의 삶이 다르지 않음을 기술함으로써, 그러한 고난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 역사에 담긴 뜻을 정확히 파악하는 길라잡이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으며, 그렇게 받아든 ‘판결문’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역사는 두 가지로 남는다. 하나는 뒤에 남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속에 남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역사라 할 때는 뒤에 남는 역사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조국의 흥망, 인민의 변동, 전쟁의 승패, 산업의 성쇠, 학문 ․ 예술의 융체(隆替)들은 다 과거의 사실로 남아 있어, 혹은 기록으로 혹은 유물로 후세에 전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으로 남거나 유물로 전하게 되는 그것만이 아니다... 산 생명으로 민족적 존재 안에 남아 있어서 그 체격이 되고, 얼굴 생김이 되며, 마음씨 ․ 성격이 되고, 풍속 ․ 신앙이 되는 것이다. 먼젓것은 종이나 돌 ․ 쇠 위에 기록이 되는 것이지만, 뒤엣것은 역사를 낳은 저 자신의 얼굴 위에, 그 심장의 육비(肉碑)에 기록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받아든 ‘판결문’에서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함석헌 선생은 분명히 한다. ‘판결문’ 자체가 아니라 ‘판결문’을 받아든 바로 우리의 ‘얼굴’과 ‘심장’에 오롯하게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라는 사실을 선생은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사람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듯, 지금 당대의 우리의 삶은 그것 자체로 우리의 역사를 책임지는 행위일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판결문’으로서의 역사가 고난의 그것이라면, 지금 바로 우리의 삶에 그 고난의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줄 씨알이 담겨져 있는 것이리라.
함석헌 / 뜻으로 본 한국역사 / 한길사 / 504쪽 / 2003 (1950,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