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과거가 간직하고 있는 경이로운 한 순간이 뿜어내는 아우라를...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을 그리고 컬러 영화의 시대에 만들어진 몇몇 흑백 영화들을 보기는 하였지만 무성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의 역사에 대한 책자인 <영화의 이해>와 같은 책을 보기는 하였지만 오래 전 일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최초의 대중 상영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열차의 도착>이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상영된 것이 1895년 12월 28일이라는 것도 이번 리뷰를 읽으면서 검색을 통해 확인했을 따름이다. 그러니 3D를 넘어 4D라는 설명이 붙은 영화가 등장하는 시기에 등장한 이 무성흑백영화 <아티스트>를 본 것은 각종 대중메체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영화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상찬과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노미네이트라는 홍보 문구에 이끌린 바가 크다.
영화의 스토리는 그야말로 과거의 무성영화에서나 먹힐 법하게 간단하다. 잘 나가던 영화 배우가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 도움을 주고, 그 여인이 성공하는 동안 반대고 그 배우는 나락의 길을 걷게 되며, 나중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역전되어 그 여인이 그 배우에게 도움을 주고, 결국 두 사람 모두 해피해지는 결말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 사이 몇몇 에피소드가 삽입되기는 하지만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사랑 이야기,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흑백무성의 스토리에 빛을 더하고 소리를 입히는 것은 (영화의 기원까지는 아니어도) 영화의 과거가 간직하고 있는 경이로운 한 시절의 아우라에 대한 어떤 경외감이다. 진정성 가득하였던 과거인 조지 발렌타인과 신선한 열정으로 가득하였던 (영화 속) 현재라고 할 수 있는 페피 밀러가 만나 탄생시킨 미래, 바로 그것이 현재의 영화를 가능하도록 만들었다는 (부인하기 힘든) 진실이다.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는 배우들의 시대는 갔다.”고 비아냥거리며 구세대를 평가절하 하는 발언을 하는 페피 밀러도, “구세대는 자리를 비켜 드리겠다.”고 비꼬며 새로운 세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조지 발렌타인도 모두 진실인 것이다.
그렇게 영화는 희미해져가던 진실, 그러니까 영화는 디지털 기술의 결과물이 아닌 영화에 참여하고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총체적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진 기술 발달의 부산물처럼 등장한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에서 사람들을 향하여 돌진하는 열차와 손에 잡힐 듯 총천연색으로 흩날리며 손 끝에 내려 앉을 것 같은 행성 <아바타>의 외계 생명체들 사이에는 많은 갈등 속에서도 잊지 않고 지키려 하였던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사랑, 조지 발렌타인과 페피 밀러의 사랑만큼이나 순수하였던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부여가 아니어도 영화 자체로서 <아티스트>는 나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눈앞을 향해 달려드는 오브제가 없어도, 우리의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총천연색이 없어도, 양쪽 귀를 순차적으로 휘몰아치는 돌비 시스템이 없어도 두 주인공에게 충분히 감정을 이입 할 수 있고 강아지 어기의 (여기서 잠깐, 이 어기에게 푹 빠진 이들이 많은데, 참고로 어기의 보다 적극적인 팬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www.facebook.com/consideruggie 에 접속하시라...) 작은 제스처 하나하나에 웃고 울고 할 수 있다는 사실, 어찌 보면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지만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영화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형식과 내용이 어떻게 결합하였을 때 가장 효과적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적인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외에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의 유력 후보자인 (주말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동진은 장담을 하고 있었다) 장 뒤자르댕의 연기, 찰리 채플린의 <씨티 라이트>와 <황금광 시대>의 세트장에서 재현되었다는 배경 장면, 그리고 여주인공 페피 밀러가 남자 주인공의 옷에 손을 넣고 흐뭇해 하는 장면이나 남자주인공 조지 발렌타인이 처음 소리를 접하게 되는 장면 등에서 보여주는 섬세한 연출력에서도 고루 진가를 발휘하고 있으니 여하튼 경이롭다.
아티스트 (The Aritst) /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 /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베조, 존 굿맨, 제임스 크롬웰 출연 / 100분 / 2012 (2011)